“제왕적 대법원장 권한 분산인가, 사법권 침해인가”…더불어민주당, 법원행정처 폐지론 재점화
사법행정의 중심축을 둘러싼 정치권과 법조계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강화를 목표로 법원행정처 폐지론에 다시 불을 붙이면서, 사법권 독립과 행정 권한 분산을 놓고 첨예한 공방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법원행정처 폐지에 반대하는 법원 안팎의 의견과 민주당의 개혁 드라이브가 맞붙으며,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근본 개편 가능성이 정국의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일 사법행정 정상화 태스크포스(TF)를 출범하고, 법원행정처의 근본적 개편안을 공식 논의하기 시작했다. 정청래 대표는 이날 "사법행정 정상화를 위해 구체적인 제도 개혁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으며, TF는 21대 국회 이탄희 전 의원이 발의한 '법원행정처 폐지와 사법행정위원회 신설' 법안을 참고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산하에서 전국 법원의 조직, 예산, 인사 등 사법행정 전반을 총괄해왔다. 그러나 과거 사법농단 의혹과 대법원장에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비판, 그리고 '정치판사' 논란 등으로 사법행정의 독립성과 중립성에 지속적인 문제가 제기돼왔다. 김영삼정부 시절부터 꾸준했던 개혁 목소리는 노무현정부 이용훈 대법원장과 문재인정부 양승태 대법원장을 거치며 '법원행정처의 해체 또는 기능 축소'라는 강경론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논의는 대안 부재와 사법부 내부 반발, 정치권 동력 상실로 진전되지 못했다.
폐지론의 옹호자들은 대법원장에 집중된 사법행정 권한을 외부 인사 중심의 위원회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제기한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한이 강했던 배경에 법원행정처의 보좌가 있다"며, "행정처가 판사들의 출세 코스를 제공하며 법관 통제의 이중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정처 역할을 대폭 축소하고 다수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법행정위원회로 기능을 이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법행정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구상에 대해선 '사법권 독립 훼손'과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차진아 고려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사법행정은 재판작용과 불가분의 관계이며, 외부 인사가 구조적으로 개입하면 재판의 독립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회나 시민단체의 위원 추천 과정이 자칫 또 다른 정치 투쟁의 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7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터진 사법농단 의혹은 행정처 폐지론에 한 차례 힘을 실었다. 그해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던 이탄희 전 의원이 사직서와 함께 농단 의혹을 폭로했고, 9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7개월간 내·외부 조사를 벌이며 광범위한 행정권 남용의 실체가 드러났다. 당시 사법부 안팎에서는 법원행정처 해체·폐지급 개혁이 논의됐지만, 구체적 실행안 마련과 법원내부 설득에 실패하면서 흐지부지됐다.
한편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자문위도 대법원장 권력 집중을 완화하려 '사법평의회' 신설을 제안했으나, 정치권 및 법조계의 반대와 이견으로 실행에 이르지 못했다. 반대론자들은 사법행정기구의 정치화와 재판 독립성 저해를 이유로 들었다.
21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및 관련 공청회에서도 '제왕적 사법행정' 권한 분산 필요성엔 공감대가 있었으나, 구체 방안에 대한 의견 차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외부 인사 참여 확대 구상 역시 당사자인 대법원이 "위헌 소지"를 들어 반대한 바 있다. 헌법 제101조 제1항 해석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도 이번 논의를 자주 교착상태로 이끌었다.
최근 민주당이 공식 TF를 통해 폐지론을 재점화하면서, 개혁 의제와 사법부 독립성 사이에서 정치적 긴장이 커질 전망이다. 실제 입법화 여부와 사법행정 정상화 로드맵 도출이 이뤄질 경우, 대한민국 사법제도의 구조적 변화가 본격 논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은 사법행정체제의 향후 진로를 두고 다시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이번 회기 이후 관련 법안 공론화 및 추가 논의를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