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4일제 만으론 부족”…머크, 한국 저출생 해법에 문화·인프라 지적
주4일제 등 근로시간 단축 정책만으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국제 회의에서 제기됐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제도만 만들기보다 돌봄 인프라 강화와 조직 문화 개선, 남성의 돌봄노동 참여 확대 등의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다양한 일·가정양립 정책을 도입했지만, 현장에서는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와 ‘눈치’에 막혀 정책 활용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머크는 12일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여성경제회의’에서 여성 경제참여 확대 방안을 주제로 민·관 정책대화 및 기자회견을 열었다. 분휘 이 머크 헬스케어 총괄 부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24억명 여성 중 다수가 평등한 경제적 기회를 얻지 못하고, 무급 돌봄 책임의 76%를 여성이 짊어진다”며 “공공과 민간이 함께 돌봄 인프라를 강화하고 가족 친화적 직장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크는 미국 포브스 선정 ‘여성을 위한 세계 최고 기업’에 올랐고, 4년 연속 기업평등지수 100%를 기록하고 있다.
주4일제처럼 근로시간을 줄이면 양육이나 돌봄 시간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이 부사장은 “근로시간 단축만으로는 저출생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주4일제가 시행돼도 아이가 평일이나 주말에 아플 수 있는데, 직장 내 문화와 실제 제도 활용의 장벽이 여전하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프 하만 한국머크 대표도 “한국은 이미 우수한 정책이 많으나, ‘눈치’ 문화와 같은 비공식적 장애물로 인해 실질적 혜택 이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고위직 여성들도 돌봄 사유로 병가 신청 대신 다른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아, 조직 내 인식 전환과 실질적 제도 활용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발레리 프레이 OECD 선임경제학자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출산율 간 연관성에 주목했다. 프레이는 “근로시간이 길고 ‘워라밸’(일·생활 균형)이 무너지면, 여성은 출산을 포기하거나 경력 단절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국제 사회는 돌봄노동의 가치 인정과 임금 수준 상향, 남성 돌봄노동 진입 확대에 힘쓰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EU와 호주는 돌봄 인력 임금 인상과 남성 참여 확대 노력을 병행 중이다.
업계와 전문가는 저출생 해소와 조직 다양성 제고를 위해선 정책 그 자체뿐 아니라 문화, 인식, 시스템 변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정책은 이미 충분하나 이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게 만드는 ‘활용 생태계 구축’이 성장의 관건이란 평가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한국 내 조직문화와 돌봄 인프라 개선, 남성 돌봄노동 진입 촉진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제도, 사회문화적 토대의 균형 발전이 저출생과 일·가정 양립 해법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