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낮추려면 돈 내라”…트럼프, 미 경제력 앞세운 글로벌 ‘수금 외교’ 논란
글로벌 무역 질서에서 힘겨루기가 거세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경제력을 무기 삼아 주요 교역국을 압박하는 전략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뉴욕타임스가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글로벌 강탈’로 규정하며 교역 상대국들에 실제적 피해와 정치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순한 무역수지 개선을 넘어, 미국에 불리한 관세를 내세워 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에 대규모 대미 투자 약속을 사실상 강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한국 협상단이 관세를 낮추는 대신 어떤 제안을 가져올지 듣고 싶다”고 밝힌 뒤, 면담 직후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했다. 이 결정의 대가로, 한국 정부는 3천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와 1천억달러 상당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약속했다. 일본과 EU도 각각 수천억달러대 투자 계획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방식을 두고 “교역 인질과의 협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회의적 평가를 내놨다. 우익 성향 카토연구소의 스콧 린시컴 부소장은 “이건 일종의 글로벌 강탈”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상대 국가가 원치 않는 조건도 관세 정책으로 압박해 받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협상 방식의 근원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왔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대니얼 에임스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개발업자 시절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고, 낮은 가격을 전제로 상대를 흔드는 사업가식 전략을 무역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에임스 교수는 “일본이나 한국, EU 등도 트럼프 대통령의 허영심을 역이용해 모호한 대규모 투자 약속을 내세움으로써 관세 인하를 유도하려 한다”고 진단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투자 약속의 실효성에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실제로 EU는 약속된 투자를 개별 기업에 강제할 권한이 없고, 일본이 밝힌 투자액의 대부분도 대출로 구성돼 있다. 한국 역시 약속한 대미 투자 3천500억달러의 실체가 대부분 대출 및 보증 형태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투자 수익의 90%가 미국인에 돌아간다”고 주장했다.
투자 약속의 규모가 비현실적이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2024년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 통계에 따르면 외국의 대미 투자 총액은 1천510억달러로 집계돼, 최근 관세 협상에서 발표된 액수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글로벌 통상 질서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미국의 경제적 압박에 대처할 협상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식 무역 전략이 다시 부상할 경우, 관세와 투자 약속을 둘러싼 국제 교역 갈등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