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 앞두고 국방비 3.8% 증액 거론”…트럼프 행정부, 안보 연계 외교 압박
한미 무역협상을 둘러싼 외교적 셈법이 노골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무역협상과 직결해 한국에 국내총생산 대비 3.8% 수준으로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미 간 안보 이슈가 정국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9일(현지시간) 미국 정부 내부문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무역 교섭 과정에서 전략적‧정치적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관세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한미합의 초기 초안'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정부에 대해 "국방지출을 GDP의 2.6%에서 3.8%로 확대하고, 방위비 분담금 증액 방안 역시 고려해달라"는 요구를 내부적으로 논의했다. 여기에 더해 "주한미군의 유연한 태세 유지에 대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적 성명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해당 문건은 한미 무역협상 전 각 부처가 한국 정부에 제시할 요구안으로 사전 작성된 것이다.

다만 이 문건 실제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이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국방비 증액 문제를 요구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정부 소식통은 "미측이 실무 단계에서 해당 요구를 직접 전달하거나 협상 의제로 올리진 않았다"고 언급했다. 실제 지난달 말 실시된 무역 협상에서도 방위비 분담이나 안보 관련 조건은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정부 역시 "무역 합의 과정에서 방위비 증액 등은 다루지 않았다"고 재차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 4월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통화에서 무역과 안보 사안을 연계하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보도에 대해 "트럼프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 등 주요 계기를 활용해 한국에 국방비 증액과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등을 요구하는 전략을 수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는 미국의 관세 및 안보 의제가 이후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지 주시하는 분위기다. 한편, 미국 행정부는 나토 회원국에도 GDP의 5%까지 국방비를 늘릴 것을 압박해왔으나, 한국의 경우 시한이나 구체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요구로 단정하긴 어렵다는 평가다. 외교가에서는 "동맹 현대화라는 큰 틀에서 공식문서에 명시되기보다, 향후 실무 협상을 통해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또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한국 외에도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서 국방비 증액 및 군사장비 구매 확대를 압박하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 이용, 대만 및 이스라엘의 기지 문제 등도 거론되면서 미국의 경제·안보 연계 압박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정치권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방비 문제가 공식 의제로 부상할 경우 격론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방위비 분담 등 안보 의제에 대해선 별도 협의 틀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조율되고 있는 가운데, 외교·국방 현안이 추가 논의될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