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고난 함께 짊어진 정치적 동반자”…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별세
민주화 운동의 격랑을 함께 견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24일 숙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75세. 김홍업 이사장의 별세 소식은 민주진영 내부뿐 아니라 정치권 전체에 적지 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24일 연합뉴스를 통해 “김 이사장이 평소 지병이 있었으나, 최근 상태가 악화돼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1950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평생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굴곡진 역정을 동반한 인물로 평가된다.

군사정권 시절, 그는 부친이 3·1 민주구국 선언 사건으로 투옥되던 1976년부터 모친 이희호 여사와 재야인사들과 직접 구명 운동에 나섰다. 김대중평화센터에 따르면, 이희호 여사 등이 입에 십자가 모양의 검은 테이프를 붙이고 침묵시위를 벌였을 당시, 이 시위를 김 이사장이 직접 기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때는 시위 배후 조종 혐의로 지명수배 당해 세 달간 도피 생활을 했다. 체포 후 고문도 겪었고, 이후 김 전 대통령의 미국 망명길에도 동행했다. 망명지에서 ‘미주인권문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며 해외에 한국 민주화 운동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데 파격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부인 인재근 전 의원이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 사건 녹음을 뉴욕타임스에 제보하도록 한 것 역시 그의 국제 연대 활동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 일로 국제 사회의 한국 민주화 연대가 한층 강화됐다는 분석이 이어진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김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홍보·기획사 ‘밝은 세상’을 설립해 선거 광고 노래 ‘DJ와 함께 춤을’을 만들어냄으로써 대중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2007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입성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말기 비리 사건에 연루돼 한 차례 수감 생활을 겪은 이력도 있다. 대통령 서거 이후에는 김대중기념사업회(현 김대중재단)를 세우고, 2019년부터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직을 맡으며 부친의 뜻을 계승하는 데 힘을 쏟았다.
김대중평화센터는 “김홍업 이사장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품으로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묵묵히 소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며 “아버지의 영광 뒤에서 고난을 함께 짊어진 아들이자 민주주의 여정의 든든한 동지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선련 씨와 아들 종대, 종민 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2호실에 차려졌고, 장례는 가족장으로 김대중평화센터와 김대중재단이 주관해 치러질 예정이다.
정치권에서는 김홍업 이사장의 삶이 한국 민주주의사에 남긴 발자취와 민주화 세대 간 연대의 의미를 다시금 평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편, 각계 인사들은 고인의 생전 헌신과 고민을 기억하며 조의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