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표로 3억 건넸다"…김건희 측근 이종호 진술, 특검 재판 전략 흔드나
정권 핵심 인물을 둘러싼 의혹 수사가 다시 정국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법정에서 수표 3억원 전달 정황을 털어놓으면서 특검 수사와 재판 전략이 맞부딪히는 양상이다. 측근들의 잇따른 진술 번복은 여권 리스크론을 자극하며 향후 정치권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종호 전 대표 측 변호인은 이날 서울 법원에서 열린 변호사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 최후변론에서 "김건희에게 수표로 3억원을 준 적이 있다"며 "김건희 특별검사팀에 가서 그 부분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민중기 특별검사팀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이 법정에서 처음 드러난 것이다.

변호인 발언은 특검이 이 전 대표에게 증거 인멸, 수사 비협조 등을 이유로 징역 4년을 구형한 데 대한 반박 과정에서 나왔다. 변호인은 수표 3억원 진술을 거론하며 "의뢰인이 특검 수사에 충분히 협조했다"는 취지로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중기 특검팀은 재판 뒤 입장문을 통해 이 전 대표로부터 해당 진술을 확보한 사실을 인정했다.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 전 대표는 지난 8월 21일 특검 조사에서 수표 3억원 전달을 진술했다. 그는 같은 달 5일 특검에 구속된 뒤 22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구속 이후 기소 직전에 나온 진술이라는 점에서 법조계 안팎에서는 형량 감경을 염두에 둔 유죄 협상, 이른바 플리바게닝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로 이 전 대표는 구속 직후 면회 온 지인에게 "나한테 플리바게닝으로 쓸 만한 카드가 하나 있다"고 말하며 특검에 새로운 진술을 하겠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점과 발언을 종합하면 자신의 재판 부담을 줄이는 대신 김 여사 관련 정보를 내놓는 거래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특검팀은 이 전 대표 진술을 서면 조서로 정리해 법원에 증거로 냈다. 특검은 조서를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는 정황을 뒷받침하는 간접증거로 제출했다. 이 전 대표는 그동안 김 여사와 함께 도이치모터스 주가를 공모해 조작했다는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왔다.
이 전 대표 측은 수표 3억원의 성격에 대해 2011년 6월 김 여사가 블랙펄인베스트에 15억원을 투자했고, 두 달 뒤인 8월 투자 수익 3억원을 수표로 돌려줬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표 측은 그 자체가 범죄를 구성하진 않지만 당시 두 사람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2차 작전 시기와 맞물려 교류했다는 정황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민중기 특검팀도 해당 진술을 김 여사가 이 전 대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대표와 함께 주가조작을 공모했을 가능성을 가늠하는 간접 증거로 평가했다. 투입된 15억원이 어떤 경위로 마련된 자금인지, 수익금이 굳이 추적이 가능한 수표 형태로 지급된 배경은 무엇인지 등 수수께끼도 새로 생겼다. 특히 투자와 수익 지급 시점이 도이치모터스 2차 작전 구간과 겹친다는 점에서 자금 흐름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그러나 특검은 현재까지 이 전 대표를 참고인으로 조사했을 뿐 해당 자금 흐름을 별도로 수사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사실관계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의 공방이 먼저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측근들의 입장 변화는 이 전 대표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이보다 앞서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는 지난 10월 24일 재판에서 2022년 4월부터 7월 사이 통일교 측으로부터 받은 고가 물품을 김 여사에게 전달했고, 지난해에는 이를 다시 돌려받아 자택에 비밀리에 보관해 왔다고 털어놨다. 그전까지 그는 물품을 김 여사에게 전달하지 않았고 잃어버렸다는 입장을 유지했었다.
김 여사의 측근으로 꼽히는 유경옥 전 대통령실 행정관도 지난달 26일 법정 증언에서 김 여사가 자신에게 허위 진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유 전 행정관은 대통령실 근무 당시 김 여사의 이른바 문고리 역할을 했던 인물로 분류돼 왔다.
이런 진술 변화가 이어지면서 정치권 일각에선 특검이 이미 상당한 증거를 확보해 측근들이 더는 김 여사를 보호할 실익이 줄었다고 판단해 각자도생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사 압박이 커질수록 추가 폭로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김건희 여사 측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김 여사 변호인단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이종호 전 대표의 진술 내용은 사실로 확인되지도 않았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수표 3억원 전달 주장 자체의 진위부터 검증돼야 한다며 특검과 재판부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여야는 사건 추이를 예의 주시하며 대응 수위를 저울질하는 모습이다. 야권에서는 추가 국회 현안질의와 특검 수사 확대를 요구할 명분이 커졌고, 여권은 사법 절차를 지켜보며 정치 공세 선 차단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향후 재판 과정에서 이 전 대표 진술의 신빙성과 자금 흐름에 대한 구체적 증거 제시 여부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도 도이치모터스 의혹과 대통령 부인 관련 쟁점을 놓고 차기 회기에서 다시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수사와 정국 모두 적지 않은 파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