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 벗어나야 국민 통합”…인요한, 국회의원직 전격 사퇴
정치권의 고질적 진영 대립을 둘러싼 물음은 이번 정국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비례대표 인요한 의원이 의원직을 내려놓으며 정계와 협치 구조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인요한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직 사퇴를 전격 선언했다. 그는 작년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당선된 뒤 약 1년 6개월 동안 의정활동을 해왔다. 인 의원은 회견에서 “저는 지난 1년 반 동안의 의정활동을 마무리하고 국회의원직을 떠나 본업으로 돌아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인요한 의원은 사퇴 배경으로 기득권 포기와 국민 통합을 직접 거론했다. 그는 “희생 없이는 변화가 없다”며 “저 자신부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본업에 복귀해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히며 국회 밖에서의 역할을 강조한 셈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 상황과 관련해선 계엄 사태를 언급하며 우회적으로 작금의 정국을 비판했다. 인 의원은 “윤석열 정부의 계엄 이후 지난 1년간 이어진 불행한 일들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극복해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구체적 사안은 적시하지 않았지만, 계엄 조치 이후 이어진 정치·사회적 혼란 전반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정치권 전반을 향해서도 강한 어조로 진영 정치의 폐해를 꼬집었다. 인요한 의원은 “오직 진영 논리만을 따라가는 정치 행보가 국민을 힘들게 하고 국가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흑백 논리와 진영 논리는 벗어나야지만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양극단 대결 구도가 지속되는 한 국회가 국민의 삶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경고로 읽힌다.
개인적 소회도 덧붙였다. 인 의원은 “지난 130년 동안 대한민국에 기여·헌신해온 제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가고자 한다. 특히 인도주의적 실천은 앞으로도 제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부족한 저를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고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사퇴 절차는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인요한 의원은 기자회견에 앞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등 지도부와 면담을 가진 뒤, 회견 직후 국회의장실을 찾아 사퇴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사무처는 관련 절차를 검토해 의원직 사퇴 효력 발생 시점을 확정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혹감과 아쉬움이 뒤섞인 반응이 나왔다. 같은 당 신동욱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아침에 대표가 많이 만류하셨다”며 사퇴 만류 시도가 있었음을 전했다. 그는 “인 의원이 의료전문가로 영입됐는데 양극단의 정치 속에 본인이 생각한 정치가 제대로 안 된다는 아쉬움과 무력감을 표시하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이 영입한 인재가 정치 현실에 좌절해 국회를 떠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랐다.
원내 지도부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당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헌신해오신 부분이 워낙 크기에 마음이 착잡하다”며 “훌륭하신 분과 함께 의정활동을 하며 난국을 헤쳐가면 좋을 텐데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인요한 의원이 그간 당 혁신과 중도 확장에 상징적 역할을 해온 만큼 공백이 클 것이라는 우려도 감지됐다.
일선 의원들도 SNS를 통해 심경을 전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페이스북에 “우리 당을 떠받치던 기둥이 무너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믿고 의지하고 있었는데, 너무 허전하다”고 적었다. 당 안팎에서 인요한 의원이 가진 상징성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반응이다.
야당도 인요한 의원의 진단엔 상당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인 의원의 진단을 무겁게 받아 들겠다”고 밝혔다. 박 수석대변인은 “인 의원이 지적했듯 오직 진영만을 바라보는 정치는 국민을 지치게 만들고 민생경제의 발목을 잡을 뿐”이라며 “정치가 흑백논리에 갇히면 국민의 삶은 회색이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동시에 국정 운영과 국회 운영 방식 전반에 대한 자성도 언급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국회를 마비시키는 발목잡기·의사진행 방해가 더는 되풀이 되지 않고 민생과 국민통합의 길로 국회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여야 모두 진영 대립의 부작용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따른다.
인요한 의원의 사퇴는 곧바로 의석 변화로도 이어진다. 비례대표인 인 의원이 물러남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 다음 순번인 이소희 변호사가 의원직을 승계하게 된다. 이소희 변호사는 현재 국민의힘 조직강화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원내 구조에 중대한 변화는 없지만, 인요한 의원이 맡아온 중도·개혁 이미지의 공백이 어떻게 채워질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인요한 의원은 정치권 입문 전부터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대한민국 1호 특별귀화자로, 2023년 10월 23일 김기현 대표 재임 당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위촉돼 윤석열 정부 시절 집권 여당 혁신 작업을 이끈 바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혁신위 활동은 42일 만에 마무리됐다. 당내 기득권 구조와 공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쇄신 드라이브가 제동을 걸렸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혁신위원장 시절 인요한 의원은 스스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희생을 강조해 눈길을 모았다. 그럼에도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8번을 배정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는 중도층과 청년층을 겨냥한 인재 영입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퇴를 두고 ‘뜻밖’이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장기적으로 당의 통합과 쇄신을 이끌 인물로 기대를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요한 의원이 정작 정당 정치 구조 속에서 자율적 행보를 펼치기 어려웠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고개를 든다. 진영 대립 구조가 강할수록 외부 영입 인사가 소신을 관철하기 힘들다는 구조적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이와 달리 일부에선 인요한 의원의 향후 행보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정치 일선에선 물러나지만, 각종 사회 현안과 통합 담론을 둘러싼 발언을 이어갈 경우 여야를 아우르는 상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를 향한 쓴소리를 계속한다면 보수 진영 내부 균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인요한 의원이 이날 회견에서 ‘본업 복귀’와 인도주의적 실천을 거듭 강조한 만큼, 단기간 내 특정 정당과의 재결합이나 신당 창당 등 정치적 행보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당분간은 의료와 인도적 활동에 집중하면서 정치권 밖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보면, 인요한 의원의 퇴장은 여야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당은 계엄 이후 정국 혼란과 진영 정치에 대한 비판을 내부 인사가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국정 운영 기조에 대한 자성론이 불가피해졌다. 야당 역시 ‘발목잡기’ ‘의사진행 방해’ 등을 거론한 인 의원의 지적을 감수해야 한다. 여야 모두 국회 운영 방식을 바꾸라는 압력을 함께 받은 셈이다.
국회는 정기국회와 추가 임시국회를 거치며 예산, 민생, 개혁 법안 등 굵직한 현안을 잇달아 다루게 될 예정이다. 인요한 의원이 던진 ‘진영 논리 탈피’와 ‘국민 통합’ 메시지가 실제 법안 심의와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반영될지가 향후 정국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인요한 의원 사퇴를 계기로 진영 대립 구조를 완화하고 민생과 통합 의제를 중심으로 한 협치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 주목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