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C 구조 좀 이상해"…정동영, 대통령도 문제 인식했다는 취지 밝혀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기구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구조를 둘러싸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대통령실 인식이 맞붙었다. 정 장관은 NSC 상임위 체계가 행정법 체계에 어긋난다는 지적에 동의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정동영 장관은 10일 경기도 고양시의 한 호텔에서 열린 통일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NSC 구조에 대한 통일분야 원로들의 비판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좀 이상하다"고 말하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문제점은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박근혜 정부 시기 개편된 NSC 상임위 체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손질해서 장관급과 차관급을 다 같이 상임위원으로 만들어 놓은 NSC 구조는 행정법 체계상으로도 아주 예외적인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고 제기했고 대통령도 충분히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외교·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실 안보실 소속 차관급 차장 3명이 동등한 상임위원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현 구조가 부처 장관의 위상을 흔들고 있다는 취지다.
앞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는 좌담회에서 차관급 차장들이 장관들과 같은 상임위원 지위를 갖는 현 NSC 체제가 통일부의 발언권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장관 발언은 이 같은 원로들의 문제 제기에 공개 동조한 셈이다.
정 장관은 외교부가 미국과 추진 중인 정례적 대북정책 공조회의와 관련해서도 통일부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그는 "한반도 정책,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으로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며 "통일부가 미국 당국과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필요시 그때그때 공조해 나간다"고 말했다. 남북정책 협의 창구를 외교부가 주도하는 구도에 선을 긋고, 통일부가 대미 협의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겠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둘러싼 이른바 자주파 대 동맹파 구도에 대해서도 정 장관은 거리를 뒀다. 자신이 자주파,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동맹파로 분류되며 이견이 잦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야당 시절 위 실장과 정당 외교활동을 같이하면서 이미 조율을 해왔고, 목표는 같다"며 "방법론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전략 목표는 공유하지만 접근 방식에서 차이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핵심 쟁점인 한미연합훈련 조정 문제에서는 미국과 대통령실 일각의 기류와 뚜렷한 온도차를 보였다. 정 장관은 "연합훈련은 한반도 평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한 뒤 "이 문제를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해야 미국도 북한과 협상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 대통령의 언급이 제일 기준"이라고 말했다. 한미연합훈련 자체보다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협상 카드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연합훈련을 대북 대화용 카드로 직접 활용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어온 위성락 실장 입장과 맞지 않는 대목이다. 북한과 대화를 위해 연합훈련을 조정 카드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위 실장의 언급과 달리, 정 장관은 대통령 발언을 근거로 논의 가능성을 거듭 강조해 양측 인식 차가 다시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측 분위기도 아직은 훈련 조정에 부정적이다.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지난 8일 박윤주 외교부 1차관과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며 이 같은 기류를 드러냈다. 그는 안 장관이 "군사훈련은 군의 생명선"이라고 말했다고 상기시키며 "이것이 앞으로도 우리가 기대하는 바"라고 언급했다. 동맹 차원의 연합 대비 태세 유지를 최우선 가치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 장관은 9·19 남북 군사합의의 연내 선제 복원 공약이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한발 물러선 평가를 내놨다. 그는 "그것은 희망사항이었다"며 "정부 내에서 전략에 따라 시기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정책 환경과 국내 정치 상황을 함께 고려해 복원 시점을 조율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대북제재와 인권 문제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는 강경론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장관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모두 제재 압박 고립 국면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며 강력한 제재와 인권 제기를 앞세우는 방식이 실질적인 비핵화와 대화 진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제재 강도가 높아질수록 북한의 군사 도발과 핵 능력 강화가 심화됐다는 기존 인식을 다시 확인한 셈이다.
정 장관은 2026년을 자신의 정치·외교 행보의 분기점으로 제시했다. 그는 "2026년도엔 신발 끈을 좀 더 조여 매고 역할을 해보려 한다"고 말하며 내년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북한과 대화 재개의 돌파구로 삼기 위해 중국 방문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미중 북핵 외교 구도 속에서 한국 통일부의 실질 참여 폭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북한을 향해서는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와 협력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정부와 협력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며 "김정은 위원장이 엄명을 내린 접촉금지령, 일체 만나지도 받지도 말라는 지침을 수정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 정부를 마지막 협력 파트너에 가까운 존재로 규정하며 대화 재개를 압박한 표현이다.
남북대화 재개 시 의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남북대화가 시작되면 대북 관광부터 제기할 것"이라고 밝히며 북미 간 국면 전환을 위해서는 미국인의 북한 여행 금지 조치도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두고 "한미 간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원산갈마관광지구 개발 등 관광 협력을 남북 및 북미 대화의 입구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국내 관광객의 북한 방문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정 장관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원산갈마관광지구 같은 데 갈 수 없기 때문에 재외국민의 방문이 먼저 이뤄지길 희망한다"며 "재외동포들이 중국이든 러시아든 여행사를 통해 북한을 관광하는 데 정부는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제재 체계와 국내 여론을 고려해 재외동포 관광을 선행 단계로 설정한 셈이다.
북한 내 억류자 문제에도 언급을 이어갔다. 정 장관은 인권단체가 요구해온 실종자 함진우 씨의 공식 억류자 추가 지정에 대해 "공식 억류자로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억류자 문제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일하게 논의했다"며 "억류자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정상회담"이라고 주장했다. 최고 지도자 간 합의를 통해서만 실질적인 해결책이 도출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전라북도지사 출마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은 자신이 전북도지사 출마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보도에 대해 "한 번도 상상 해본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설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NSC 구조 개편론과 한미연합훈련 조정 가능성, 대북제재와 인권 문제를 둘러싼 정 장관의 발언은 향후 외교안보 라인 전반의 조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는 대통령실과 통일·외교·국방부 간 역할 분담을 재점검하는 한편, 남북·북미 대화 재개 시점과 연계해 NSC 운영 체계와 대북정책 수단을 단계적으로 조정할지 검토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