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8천억 계약 해지…삼성중공업, 러시아 조선 위기 딛고 대규모 손배 추진
바다 위를 꿈꿨던 쇄빙 LNG 운반선과 셔틀탱커가 경계와 긴장의 파도에 갇히고 말았다. 18일 삼성중공업은 러시아 즈베즈다 조선소와 체결한 총 4조8천525억 원 규모의 선박 기자재 및 블록 공급 계약을 공식 해지했다고 밝혔다. 이 계획은 2020년과 2021년에 체결된 여정의 끝이었고, 그 속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즈베즈다 조선소는 지난해 6월, 이미 지급된 8억달러(약 1조1천억 원)의 선수금 반환과 그 이자를 요구하며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은 일방적인 해지를 강하게 부정하며, 지난 7월 싱가포르 중재법원에 계약 해지의 위법성 확인을 신청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중재절차와 합의안을 병행했지만, 전쟁 3년의 장기화가 불확실성을 짙게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장이 열어나간 시간 속에서, 삼성중공업은 결국 자사 권리의 방파제를 다지기로 결정했다. 해지 통보에 맞서 손해배상 청구를 선택했고, 이미 지급된 8억달러의 반환 요구는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손실을 넘어서는 피해에 대해서는 추가 배상을 철저히 추구할 계획이라고 통지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상황의 뿌리는 선주사의 위법한 결단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재를 통해 계약 취소의 위법성을 밝히고, 정당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단단한 의지를 전했다.
한편, 드넓은 조선 바다에서 닻을 내린 계약 하나가 잔상처럼 남았다. 삼성중공업은 이번 해지로 수주 잔고가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2025년 3월 말 기준 271억달러(37조1천억 원) 규모의 풍부한 수주 잔고를 유지하고 있다. 매출과 수익성에는 뚜렷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거대한 파고 속에서도 안정된 항해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세계가 경직된 제재와 갈등의 장벽을 실감하는 이 시기, 조선업의 현주소는 한층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남은 법적 다툼과 선금 반환 논의, 국제 정세에 따른 변동은 업계와 투자자, 그리고 실수요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변동성의 물살에 흔들릴지, 단단한 선체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지, 모든 이의 시선이 이 거대한 계약 해지의 후폭풍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