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친환경차 반등 조짐”…한국 자동차 내수·수출, 완만한 회복→정체 국면 시험대
한국 자동차산업이 2년여의 역성장을 지나 내년부터 완만한 회복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내수와 수출 모두 소폭 증가세를 회복하고, 이에 따라 국내 생산도 3년 만에 반등을 시도할 것으로 관측됐다. 다만 미국 관세, 중국계 브랜드 확산, 노조법 개정 등 구조적 압력이 동시에 가해지면서 회복의 내실을 가늠하는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더해졌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KAMA가 5일 발표한 2025년 자동차산업 평가 및 2026년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자동차 내수는 전년 대비 2.5% 늘어난 167만7천대 수준으로 추정됐다. 2024년에 기록한 마이너스 6.5%의 깊은 부진이 기저효과로 작용한 가운데, 기준금리 완화와 개별소비세 인하, 노후차 교체지원, 전기차 보조금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며 수요 회복을 이끌었다는 평가다. 보고서는 정책·금융 여건이 소비자의 구매 심리를 지지하는 가운데, 신차 출시 사이클이 수요를 자극하며 내수 회복의 하방을 받쳤다고 진단했다.

내수 회복의 중심에는 친환경차가 자리한 것으로 분석됐다. KAMA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친환경차 내수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7.5% 증가한 67만6천대에 이르러 전체 시장의 절반에 근접했다. 특히 전기차는 보조금의 조기 집행과 주행거리·충전 효율이 개선된 신차 투입 효과가 겹치며 54.9%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보고서는 전기차 시장이 일시적 수요 정체로 불리던 캐즘을 벗어나 보급기 진입을 향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했다. 다만 충전 인프라 확충 속도와 중고 전기차 잔존가치 안정이 향후 확산 속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지목됐다.
수출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라는 돌발 변수로 올해 물량 기준 역성장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KAMA는 지난 4월부터 10월까지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 완성차에 25%의 고관세를 부과한 여파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현지 생산 전환으로 최대 수출 시장이 흔들리며, 올해 수출 물량이 전년 대비 2.3% 감소한 272만대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와 공급망 재편이 동시 전개되며 국내 생산 기지의 수출 의존 전략에 구조적 균열이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반면 수출액은 중고차 수출 급증이 방어막 역할을 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10월 누적 기준 중고차 수출은 78%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가가 낮은 중고차 비중이 빠르게 확대됐음에도 전체 수출액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718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KAMA는 내연기관차 신차 수출 부진을 중고차와 친환경차가 보완하는 다층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품질 관리와 수출 국가별 환경 규제 기준 충족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생산 측면에서는 미국 고관세라는 역풍 속에서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친환경차 수출 증가와 견조한 내수 방어 효과가 완충 장치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제시됐다. KAMA는 올해 국내 자동차 생산이 408만대 수준으로 전년 대비 1.2% 감소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산했다. 2024년 마이너스 2.7%와 비교하면 감소 폭이 줄어든 것이다. 협회는 내연기관차 중심의 단일 축에서 하이브리드와 전기차를 아우르는 다중 포트폴리오로의 전환이 생산 기지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했다.
KAMA는 내년에 내수와 수출, 생산이 모두 증가하는 완만한 회복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내수는 전기차 보조금 확충과 더불어 16종에 달하는 주요 신차 출시, 노후차 교체 수요 확대 등이 결합되며 169만대 수준으로 전년 대비 0.8%가량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이 수치는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가 내년에도 연장 적용된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라며, 세제 지원이 축소될 경우 회복 강도는 즉각 약화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협회는 금리 수준, 가계 소득 여건, 친환경차에 대한 소비자 신뢰가 내수의 삼각 축을 형성할 것으로 분석했다.
수출은 통상 리스크가 다소 완화되며 플러스 전환이 예상됐다. 미국과의 협의 끝에 25%에서 15%로 하향된 관세율이 지난달 1일부터 소급 적용되는 것이 확정되면서 대미 수출의 불확실성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 보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 선호도가 확대되고 유럽연합의 환경 규제가 추가 강화되는 환경에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친환경 라인업을 앞세워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내년 수출 물량은 275만대, 전년 대비 1.1% 증가가 예상됐고, 수출액은 0.3% 늘어난 720억달러 수준으로 제시됐다.
생산은 내수와 수출의 미약하나마 동시 회복, 그리고 신공장 가동 효과가 반영되며 1.2% 증가한 413만대 수준으로 전망됐다. 특히 현대자동차 울산 전기차 신공장과 현대차·기아의 국내 신규 공장이 단계적으로 가동되면서,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반의 생산체제가 본격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보고서는 전기차 전용 공장이 가동되면 배터리 조달, 부품 로컬라이제이션,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등 가치사슬 전반의 구조 개편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강남훈 KAMA 회장은 2026년을 국내 자동차산업에 있어 중요한 분수령으로 규정했다. 그는 2026년에는 국내 전기차 신공장의 본격 가동과 친환경차 수출 확대가 맞물리며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중국계 브랜드의 빠른 글로벌 확장, 고조되는 보호무역 기조, 노조법 개정 등 복합적인 압력이 산업 전반에 새로운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동화 전환과 통상 리스크, 노동 환경 변화가 동시에 전개되는 복합 위기 국면이라는 인식이다.
강 회장은 국내 생산 기반을 지키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변화한 통상 환경과 시장 구도에 대응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계 브랜드 확산으로 가격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산차의 가격·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등 생산 인센티브 정책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 인센티브를 통해 국내 공장에 대한 투자 매력을 유지하는 한편, 친환경차 연구개발과 고급 인력 양성을 병행해야 장기적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한국 생산 기지의 전략적 위상을 보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기차·하이브리드차를 축으로 하는 친환경차 전환이 한국 자동차산업의 중장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책의 일관성과 세제 지원의 지속 가능성을 회복의 전제 조건으로 지목하고 있다. 환율 변동, 배터리 원자재 가격, 글로벌 수요 둔화 우려 등 외생 변수도 상시 관리 대상이다. 내년과 2026년의 완만한 회복세가 구조적 성장 궤도로 이어질지 여부는, 국내 생산기지의 비용 경쟁력과 기술 혁신, 그리고 통상 환경 변화에 정교하게 대응하는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고조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