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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꽃, 역사가 흐른다”…연천에서 만나는 평화로운 여름 여행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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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꽃, 역사가 흐른다”…연천에서 만나는 평화로운 여름 여행의 감각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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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풍경을 고르는 취향이 달라졌다. 더 시끄럽고 빠른 곳보다는, 자연스러운 고요와 오래된 기억이 배인 장소로 눈길이 머문다. 경기도 연천군은 임진강과 한탄강이 굽이치는 잔잔한 물길 위에, 삼국시대의 성곽과 선사시대의 시간, 그리고 허브 내음이 스미는 산책길이 고요하게 얽혀 있다.

 

요즘은 재인폭포 사진을 SNS에 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현무암 주상절리가 빚어낸 높고 깎아지른 절벽, 그 위로 무심코 쏟아지는 물줄기의 청량함은 여름의 더위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는 사람까지, 각자의 속도로 폭포 주변을 걷는다. 북적거림 없이 마주치는 자연의 소리와 물안개, 그리고 사진기에 담기는 투명한 경관이 마음을 부드럽게 적신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재인폭포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재인폭포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연천군은 이날 오전 기준 30도, 습도 73%의 여름 답답함 속에서도 남서풍이 미풍으로 스며들고, 낮은 강수확률로 야외활동이 한결 여유로웠다. 지역 곳곳에 마련된 산책로와 박물관, 고대 성벽 등은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욕구를 키운다.

 

호로고루와 당포성에서 마주하는 고구려의 시간은 특별하다. 한때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 성곽은, 지금은 평화로운 임진강을 굽어보는 산책 코스가 된다. 고대 세 왕국의 축성법이 겹치는 성벽 위에서, 잠시 바람을 맞으며 강 건너를 바라본다. 여행객들은 “이런 고요가 그리웠다” “성벽을 걷다 보면 마음도 넓어지는 것 같다”고 표현하며, “화려한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연천에서 다시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연천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간이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의 전시, 손끝으로 만지는 구석기 체험, 아이와 함께 선사인처럼 불을 피워보거나 그림을 남기는 일.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호기심의 다른 얼굴이었다”고 느끼는 가족들의 고백이 이어졌다.

 

허브빌리지에선 그야말로 지중해 여행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향기로운 정원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백여 종의 허브와 난대수목이 자라는 온실, 커피 향에 취하는 조용한 카페, 푸른 임진강 전망이 이어진다. 누구의 방해 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속도로 쉼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방문객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여행 커뮤니티에는 “사람이 적어서 진짜 쉬러 갔다 온 기분” “차분히 걷다가 저녁 노을과 별빛까지 한 번에 얻었다”는 후기가 쌓인다. 일상에 치여 무뎌진 감각에 물기 어린 숨을 다시 불어놓는 삶의 작은 여유다.

 

연천의 풍경은 바쁘게 지나쳐온 시간에 대한 위로이자, 오래된 것과 자연이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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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재인폭포#전곡선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