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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워너브러더스 106조 인수…콘텐츠 빅뱅 촉발하나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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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OTT 시장 판도를 뒤흔들 초대형 인수합병이 성사 단계에 들어갔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102년 역사의 전통 할리우드 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를 720억 달러, 약 106조 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스트리밍 중심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과 오프라인 극장·케이블 채널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미디어 공룡의 결합인 만큼, 콘텐츠 제작과 유통 구조 전반에서 지각변동이 예상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는 이번 딜을 글로벌 OTT 경쟁의 분기점으로 보면서, 향후 반독점 심사와 정치적 변수에 따라 엔터테인먼트 산업 재편 속도가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최근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를 위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거래 구조는 주식과 현금이 섞인 혼합 방식으로, 워너브러더스 주당 가치는 27.75달러로 책정됐다. 이를 반영한 인수 대상의 총 기업가치는 약 827억 달러, 한화 약 122조 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넷플릭스가 실제로 지불하는 인수 대금은 약 720억 달러다. 워너브러더스 측은 그룹 분할 절차가 2026년 여름 발효될 것으로 보고 있으며, 넷플릭스와의 인수 거래는 내년 3분기 마무리를 목표로 진행 중이다.

워너브러더스는 2022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가 합병하며 출범한 통합 미디어 그룹이다. 영화와 TV 스튜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 유력 뉴스 채널 CNN 등 다양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룹은 내년 두 개의 상장사로 분할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분할이 이뤄지면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자산에 해당하는 절반을 인수하게 된다. 나머지 절반은 디스커버리 글로벌로 남아 CNN을 비롯한 케이블 채널을 품게 되는 구도다.

 

넷플릭스가 노리는 핵심은 방대한 수준의 콘텐츠 지식재산권이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DC 코믹스 라인업부터 왕좌의 게임, 해리포터에 이르는 글로벌 메가 프랜차이즈 IP를 대거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넷플릭스가 그동안 쌓아 온 오리지널 시리즈와 영화, 애니메이션 포트폴리오가 겹쳐지면서, IP 파이프라인 측면에서 어느 경쟁사도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규모의 ‘콘텐츠 수직 계열화’에 근접하게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넷플릭스는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가 설립한 이후 28년 만에 DVD 우편 대여 스타트업에서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으로 변신했다. 1998년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7년 스트리밍 기능을 도입하며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시대로 선제 진입했다. 2011년부터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었고, 2013년 하우스 오브 카드가 전 세계적 흥행을 기록하면서 ‘직접 제작’ 모델의 상업성과 영향력을 입증했다. 이후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오징어게임 등 굵직한 히트작을 연이어 내놓으며 오리지널 중심 전략을 강화했고, 올해에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까지 흥행시키며 자체 제작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콘텐츠 장르 다변화도 진행 중이다. 넷플릭스는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확보하며 스포츠 라이브 중계 시장에 본격 진입했다. 전통적으로는 방송사와 케이블 채널이 장악해 온 영역이지만, OTT 플랫폼의 시청 데이터 분석 역량과 구독 기반 수익 모델이 결합하면 새로운 시청 경험과 맞춤형 광고 상품이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워너브러더스 인수가 이뤄질 경우, HBO 맥스의 스포츠·뉴스 포맷과 넷플릭스의 데이터 기반 추천 기술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서비스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뒤따른다.

 

특히 이번 거래는 스트리밍 중심의 넷플릭스와 극장, 케이블, 스트리밍을 모두 보유한 워너브러더스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미디어 밸류체인 구조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제작에서 배급, 극장 상영과 OTT 서비스까지 한 그룹 아래 통합되는 수직 계열화가 심화되면, 기존 방송사와 케이블 사업자는 우수한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는 창구가 줄어들 수 있다. 반면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걸친 구독자 네트워크를 통해 워너브러더스 작품의 장기 수익화를 도모할 수 있어, 콘텐츠 한 편당 수명과 수익을 극대화할 여지가 커진다.

 

경쟁 구도 측면에서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빅3 재편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애플, 아마존이 자체 플랫폼을 앞세워 콘텐츠 투자를 늘리는 가운데, 디즈니와 컴캐스트는 각각 디즈니플러스와 피콕을 중심으로 하이브리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넷플릭스와 워너브러더스의 결합은 디즈니의 마블과 스타워즈, 폭스를 한 몸에 안은 ‘IP 제국’ 모델에 맞서는 또 다른 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서는 로컬 방송사와 통신사가 협업한 토종 OTT가 방어막을 치고 있지만, 초대형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결합은 중장기적으로 시장 집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파라마운트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에서 앞서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부분이다. 파라마운트는 케이블 자산을 포함한 워너브러더스 전체 인수를 원하는 제안을 내놨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거론하며 규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공격적인 가격과 조건을 담은 두 건의 제안서를 연달아 제출하며 판세를 뒤집은 것으로 전해졌다. CNN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파라마운트와 동일한 수준의 고액 해지 수수료 조건까지 수용하며 인수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규제와 정치적 변수는 이번 딜의 최대 리스크로 꼽힌다. 미국 행정부는 넷플릭스와 워너브러더스 간 거래 전반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스트리밍 시장 점유율과 전통 미디어 자산이 한 손에 모이면서, 특정 플랫폼이 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양쪽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특히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은 최근 빅테크 기업과 플랫폼 사업자의 인수합병에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콘텐츠 IP는 한 번 제작되면 전 세계 시장에 거의 추가 비용 없이 반복 공급할 수 있는 전형적인 규모의 경제 자산이다. 여기에 OTT 플랫폼이 가진 시청 데이터와 추천 알고리즘이 결합되면, 이용자 취향에 맞춘 편성·홍보·수익 모델 설계가 가능해진다.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까지 품을 경우 특정 장르, 예를 들어 히어로물이나 판타지 시리즈 같은 고부가가치 IP 분야에서 시장 집중도가 급격히 높아질 수 있고, 이는 반독점 심사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유럽 규제 당국 역시 반독점 법규를 근거로 엄격한 심사를 예고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디지털 시장법과 디지털 서비스법 등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의 지배력 남용을 견제하고 있는데, 워너브러더스의 스트리밍 사업까지 넷플릭스가 흡수할 경우 유럽 내 콘텐츠 공급과 가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유럽 영상 산업은 자국 제작 쿼터와 로컬 제작 투자 의무를 강조해 온 만큼, 초대형 글로벌 OTT의 등장은 문화 다양성 측면에서도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관 소유주를 대표하는 무역 단체 시네마 유나이티드는 넷플릭스가 전통적으로 극장 개봉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문제 삼으며, 이번 인수를 글로벌 상영 산업에 전례 없는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대형 블록버스터가 극장 독점 상영 기간을 줄이고 곧바로 스트리밍으로 직행하는 패턴이 강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극장 산업의 수익성과 투자 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는 워너브러더스의 현재 사업 구조를 유지하고, 영화관 개봉을 포함한 강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크리에이터와 제작사에 더 다양한 유통 경로를 제공하고, 극장과 스트리밍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모델을 설계하겠다는 메시지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 그렉 피터스는 우리의 글로벌 영향력과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워너브러더스가 창조하는 세계를 더 넓은 시청자에게 소개할 수 있다며, 회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스트리밍 서비스 팬층을 늘리는 한편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체를 강화하는 방향을 지향하겠다고 강조했다.

 

궁극적으로 이번 인수는 디지털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와 ‘데이터 기반 운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시켜주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스트리밍 기술에서 출발한 IT 기업이 전통 미디어 자산까지 흡수하는 수직 결합이 가속화될 경우, IP 확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플랫폼 집중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규제 강화 움직임도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는 이번 초대형 딜이 실제 규제 문턱을 넘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균형점이 형성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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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워너브러더스#파라마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