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무역합의, 정상 결단만 남았다”…이재명-트럼프, APEC 앞 정치력 시험대
한미 무역합의를 둘러싼 막판 줄다리기가 정점에 이르렀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지난 22일(현지시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의 고위급 대면 협상을 마무리하며, 이제 양국 정상의 ‘정치적 결단’만을 남겨두게 됐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공식화 여부에 정가의 시선이 쏠린다.
이날 회동은 지난 16일에 이어 불과 6일 만에 이뤄졌다. 김용범 실장은 협상 종료 후 취재진에게 “남아 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논의를 더 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추가 대면 협상에 대해선 “만나기 어렵다. 더 논의할 사안이 있으면 화상으로 해야 한다”면서 사실상 실무선 협상의 종료를 시사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고위급 협상 종료를 두 정상의 직접 결단으로 최종 타결을 넘기는 수순으로 평가했다. 남은 쟁점은 3천500억 달러(약 500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펀드의 현금 지급 비율, 납입 기간, 투자처에 대한 한국 측 의견 반영 등이 꼽히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고수해 온 ‘전액 선불’ 요구를 한국이 감당할 수 있는 분납안으로 절충할지 여부가 최대 변수로 부상한 상황이다.
한미 간 협상 진전의 기류도 감지된다. 김정관 장관은 최근 “‘미국이 여전히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에 “거기까지는 아니다”라고 답해, 기존 요구에서 유연해진 기류를 내비쳤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매년 250억 달러씩 8년간 2천억 달러를 투자하고, 나머지 1천500억 달러는 신용 보증 등 방식으로 대체하는 방안까지 논의 중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2029년 1월까지) 내 투자액 집행에 집착하고 있어, 납입 기간 조정이 최종 협상 최대 쟁점임을 재확인했다.
정치권은 APEC 정상회의에서의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중국 견제와 동맹의 균열 방지라는 전략적 이해가 맞물려 있어, 급변하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동맹국인 한국과의 합의 지연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에 맞서 미국과 동맹국의 단결”을 강조한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만약 APEC 개막 전 한미 무역협상 최종 타결이 이뤄질 경우,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합의 내용을 공식화하거나 ‘팩트시트’ 형태로 발표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와 연계해 국방비 증액, 동맹 현대화, 원자력 협력 등 안보·경제 분야의 추가 합의 발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반면, 무역협상이 지연될 경우 다른 합의들도 뒤따라 연기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정치권과 외교가는 “한미 양국 정상의 결단이 APEC에서의 최종 합의에 결정적 변수로 남았다”고 진단한다. 최종 합의가 이뤄질 경우, 한미동맹의 전략적 결속력과 국내 정치 지형에도 적지 않은 파급력이 예상된다. 정가 안팎에서는 양국 정부가 APEC 정상회담 일정에 맞춰 협상 타결을 도모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