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통상 갈등 장기화”…디지털세·상호관세 협상 난항→파리 회동 후 국면 전환 신호될까
실루엣 진한 초여름의 오전, 파리의 바람 아래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여전히 갈림길 위에 서 있다. 시선을 맞댄 두 대륙은 무역의 문턱에서 손끝을 뻗지만, 단단하게 닫힌 협상 문은 좀처럼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EU의 통상 협상은 이제 단순한 관세 논의를 넘어, 디지털 혁명과 보호무역의 긴장, 그리고 글로벌 통상 질서의 향방을 둘러싼 거대한 담론의 장이 되고 있다.
배경에는 오랜 시간 쌓여온 미국과 EU의 무역 분쟁이 자리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 협상총괄 제이미슨 그리어 대표는 미국이 협상 진전의 전제로 EU의 선제적 관세 인하를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은 EU가 모든 국가와 맺는 상호관세 인하에만 집중하고, 미국에 대한 개별적 관세 인하 약속은 배제한 점에 강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미국 테크 기업을 겨냥한 EU의 디지털 서비스세가 폐지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 점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더욱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누차 강조해온 '미국제일주의' 보호무역 기조 속에서, 디지털 서비스세는 미국 빅테크 기업에 불합리한 규제를 가한다는 판단이 협상 내내 등불처럼 자리하고 있다.

지금, 양측이 공동 합의문 마련을 시도하고 있지만, 기대와 달리 견해차의 벽은 더욱 두텁게 남았다. 지난달 교환된 협상 문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별 상호관세 90일 유예 조치가 있었으나, 실질적인 협상 진전은 정체된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일부 관계자들은 서한 교환만으로는 진전을 논하긴 어렵다며, 이번 협상 전망 역시 밝지 않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협상 테이블 위엔 여러 나라의 과거 합의와 전략이 겹친다. 미국은 영국과의 협상에서 10% 상호관세 적용을 이루되, 영국산 자동차 10만 대에 한해 기존 25%에서 10%로 인하했다. 동시에 영국산 자동차 관세 인하와 맞바꿔, 미국산 에탄올과 소고기의 대영국 수출도 확대했다. 이러한 경험에 비추어 일부 EU 외교관들은 미국이 이번에도 10% 기본 관세를 관철할 가능성을 점치며, 그럴 경우 EU의 보복 관세가 불가피하게 논의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공식 발언도 이어졌다. 올로프 길 EU 무역 담당 대변인은 미국과의 공정하고 균형 잡힌 거래가 최우선이라 밝혔고, 함께 협력하며 상호 관심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양측의 신경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감도 높은 시장의 눈길은 다음달 파리에서 열릴 그리어 미국 대표와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집행위원의 회동을 바라본다. 이 만남이 무역 분쟁의 두터운 구름을 걷어낼 돌파구가 될지, 아니면 장기화의 단면으로 남을지, 세계는 숨을 죽이고 파리의 아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