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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부족에 키보조제 열풍”…디지털 시대, 성장환경 악화 우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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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성장 보조제 사용이 부모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오히려 기본적인 수면과 운동 등 성장에 필수적인 생활 습관이 악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한소아내분비학회가 발표한 최근 전국 학부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초·중·고생 자녀의 28%가 키성장 보조제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지만, 수면 부족과 전자기기 사용 증가, 운동 및 식습관 등 성장 기반 환경은 오히려 후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계와 의료계는 “디지털 환경과 생활습관 변화가 아동·청소년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전체 조사에서 부모 10명 중 3명은 키성장을 위해 자녀에게 보조제나 칼슘(33.9%), 비타민D(32.4%) 등을 제공했다고 답했다. 또래보다 키가 작은 아동 그룹의 경우 보조제 사용률은 39.6%로 평균을 크게 상회했다. 하지만 키 성장 보조제의 효과에 대해선 75.7%가 ‘보통’ 혹은 ‘효과 없음’을 선택했다. 학회는 실제 성장은 성장호르몬이 필요한 특정 내분비 장애 환아에게만 약물치료가 권고되며, 무분별한 키 주사 사용이나 영양제 남용에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투자와 달리 생활습관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고등학생의 80% 이상이 하루 8시간 미만의 수면을 취하고 있었으며, 초등학생 역시 3명 중 1명꼴로 충분한 수면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취학 아동에서도 26.3%가 8시간 미만의 수면을 하고 있어, 성장 핵심 시기에 숙면 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장호르몬 분비가 주로 야간에 집중된다는 점에서 숙면 부족이 키 성장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지적한다.

 

전자기기 사용 급증도 심각하다. 응답 아동의 55.7%가 잠자기 직전까지 스마트폰 등 기기를 사용한다고 했으며, 중고생은 70% 이상이었다. 미취학 자녀 역시 31.6%가 주중 1~2시간씩 디지털 기기에 노출됐다. 이는 야외활동 및 신체운동 감소, 늦은 취침으로 이어지면서 성장 발달에 장기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실제로 디지털 환경 노출은 체내 멜라토닌 분비 저하와 함께 수면 질 악화, 집중력 저하, 식습관 불량 등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운동시간 역시 감소했다. 절반 이상(55.3%)이 주 3회 미만 운동을 한다고 응답, 특히 여고생의 42.4%는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쁜 학업 등의 이유로 신체활동이 생활에서 배제되는 현실이다. 식습관 측면에선 약 20%가 하루 세 끼를 지키지 못하고, 여고생은 40%가 하루 2끼 이하로 식사한다고 답했다. 미취학도 7.3%가 아침 식사를 거르는 등 영양 관리도 조기에부터 허술한 양상이었다.

 

성장기 환경 악화는 디지털 기기 및 사회문화적 요인과 맞물려 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2016년 대비 2배 이상 늘었고, 부모들은 ‘더 높은 키’에 대한 기대로 자녀에게 영양제 등 보조제를 투입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실제로 성인에서 기대하는 평균 신장(남자 180.4㎝, 여자 166.7㎝)은 현행보다 5㎝ 이상 높아 사회적 기대와 현실 간 격차도 커지고 있다.

 

황일태 대한소아내분비학회 회장은 “성장은 몇 주의 주사나 영양제 만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숙면과 균형 잡힌 식사, 꾸준한 운동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성장호르몬 주사 등 의약적 처치는 특정 내분비 질환에만 제한적으로 쓰여야 함을 분명히 했다. 이해상 학회 홍보이사는 “스마트폰 사용 증가, 수면·운동 부족, 식습관 불량이 10년간 지속되고 있다”며 “문제가 미취학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더욱 빠른 개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보조제 의존보다는 정확한 진단과 생활환경 개선을 통한 근본적 성장 관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의료계는 “AI와 빅데이터 기반의 맞춤형 건강관리가 확대되고 있지만, 실제 성장에는 여전히 생체리듬, 수면, 운동, 식생활 등 기초 생활환경 관리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동·청소년 건강관리를 위한 융합기술과 디지털 건강관리 서비스가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는 성장기 아이들의 기초 환경 개선이 실제 건강 개선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결국 기술과 생활환경, 사회적 기대치의 균형이 미래 건강 성장의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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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소아내분비학회#키성장보조제#전자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