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도에페드린 무단 진열판매”…약사회, 청소년 마약 노출 경고
불법 마약류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마약 전구물질 함유 의약품 관리가 약국 유통 현장에서 느슨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대한약사회는 창고형 약국을 중심으로 슈도에페드린 성분 조제용 의약품이 일반 상품처럼 매대에 진열돼 판매되고 있다며, 청소년의 마약 범죄 노출과 국민 안전 훼손 가능성을 강하게 경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미 관련 판매관리 지침을 수차례 공지한 상황에서, 현장 관리 공백이 마약류 오남용의 새로운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마약류 전구물질 관리 체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할 분기점으로 보는 분위기다.
대한약사회는 16일 특정 지역 창고형 약국에서 슈도에페드린 함유 조제용 의약품이 대량 진열돼 자유 선택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슈도에페드린은 감기나 비염 등으로 인한 코막힘을 완화하는 데 쓰이는 성분이지만, 과거 여러 국가에서 이 성분을 대량 확보해 불법 마약류를 제조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어 각국에서 전구물질로 분류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처방전 기반 판매, 1인당 구매량 제한 등 별도 지침이 운영되고 있다.

슈도에페드린은 교감신경계에 작용해 코 점막 혈관을 수축시키는 약리 기전을 가진 성분으로, 호흡기 증상 완화 효과가 크다. 동시에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고용량 또는 장기간 복용 시 심혈관계 부담과 중추신경계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다. 특히 불법 제조 과정에서 화학적 변환을 거치면 마약류와 유사한 각성 효과를 내는 물질로 전용될 수 있어, 세계적으로 전구물질 관리 대상에 포함돼 있다. 대한약사회가 창고형 약국의 진열 방식을 문제 삼은 이유도 이 같은 약리 특성이 단순 감기약 수준의 일반의약품과는 다른 고위험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한약사회는 조제용 슈도에페드린 제제가 일반 소비재처럼 매대에 진열돼 있는 구조 자체가 안전망을 약화시킨다고 강조했다. 특히 약사 대면 상담과 복약지도가 생략될 경우, 소비자는 고위험 성분의 존재나 약물 상호작용, 기저질환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반복 구매와 중복 복용에 노출될 수 있다. 약국 규모가 크고 셀프 선택 비중이 높은 창고형 매장 특성상, 감기약·비염약과의 혼합 진열이 이뤄질 경우 사실상 관리 사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약사회에 따르면 슈도에페드린 함유 조제용 의약품에는 이미 구체적인 판매 관리 지침이 마련돼 있다. 병 포장 형태의 처방·조제용 제품은 처방전에 따라 조제된 경우에만 판매가 허용되고, 일반의약품으로 취급되는 제제라도 1인에게 최대 4일분까지만 판매하도록 상한선을 두고 있다. 동일 성분 제제를 반복적으로 구입하려는 경우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하도록 해, 일정 수준 이상 과다 구매나 의심스러운 패턴을 추적할 수 있는 장치도 포함돼 있다. 약사회는 이런 제도적 장치가 지키기 어려운 규제가 아니라, 고위험 성분 관리의 최소한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1년부터 슈도에페드린 제제 관리 강화를 골자로 한 공문을 대한약사회와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등에 반복 발송해, 제약사와 약국 모두에 주의를 당부해 왔다. 공문에는 판매량 관리, 반복 구매 모니터링, 진열 방식 자제 등 구체적인 준수 사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편의성과 매출 확대를 이유로 창고형 약국 중심의 자율 선택 진열 관행이 유지되고 있어, 공문 통보만으로는 관리 실효성이 충분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부작용 측면에서도 고위험군 관리는 필수라는 지적이다. 슈도에페드린은 고혈압·심혈관 질환자, 전립선비대증 환자 등에게 혈압 상승, 심박수 증가, 배뇨 곤란 등의 이상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약사회는 특히 무분별한 중복 복용이나 고용량 복용 시 불면, 신경과민, 심계항진 등 중추신경계 이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며, 복용 전 약사 상담을 통한 기저질환·복용 약물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일 제품이 아닌 여러 감기약을 동시에 복용하는 소비자 습관을 고려하면, 매대 자율 선택 방식은 중복 복용 위험을 키우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청소년 보호 관점에서의 우려도 크다. 대한약사회 권영희 회장은 마약 전구물질 성분 의약품을 대량 진열해 자유 선택 형태로 판매하는 방식이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인의 접근성을 불필요하게 높이고, 결국 불법 전용 위험과 마약 범죄 노출 가능성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전 세계적으로 마약류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의약품 유통 단계의 관리 허점이 새로운 공급 경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비용이 상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약사회는 슈도에페드린 제품의 관리 방식을 디지털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전산 기반 판매 이력 관리 시스템을 통해 동일 사용자의 반복 구매 패턴을 자동 탐지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실시간으로 정보를 연계하면 전구물질 유출 가능성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 중인 중앙 집중식 마약류 처방·조제 관리 시스템을 일반 전구물질까지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도 장기 과제로 거론된다. 약국 현장에서의 업무 부담 증가를 줄이기 위해서는 약국 전산 프로그램과 국가 관리 시스템 간 표준 연동이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슈도에페드린 관리 강화가 이미 보편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 여러 주에서 운전면허증 등 신분 확인을 거친 실명 구매와 1인당 일일·월간 최대 구매량 제한을 병행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매가 불가능하다. 유럽에서도 약국 내 개별 보관과 약사 대면 판매를 원칙으로 삼는 국가가 다수다. 대한약사회는 우리나라 역시 제도상 관리 수준은 국제 기준에 근접해 있으나, 창고형 약국과 같은 특수 유통 구조에 맞춘 세부 지침과 현장 점검이 부족한 점이 문제라고 보고 있다.
최용석 대한약사회 약국담당 부회장은 관리·감독이 필수적인 성분을 포함한 의약품을 대량 진열 후 자율 선택 형태로 판매하는 것은 국민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슈도에페드린 제품의 무분별한 판매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공공보건 문제로 규정하며, 관계기관의 신속한 개입을 촉구했다.
대한약사회는 이번 사안을 슈도에페드린 함유 제제 판매관리 지침을 현저히 훼손하는 행위로 판단하고, 관계기관에 현장 점검과 사실 관계 확인을 공식 요청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 행정처분과 사법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계와 규제 당국이 전구물질 관리 강화와 약국 유통 구조 개선 방향을 어떻게 조율할지에 따라, 국내 의약품 기반 마약류 확산 방지 체계의 실효성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논란이 실제 제도 개선과 현장 관리 강화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