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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원 위자료 판결”…서울중앙지법, 12세 의붓딸 13년 성폭력→법원의 사회적 책임 재조명
사회

“3억원 위자료 판결”…서울중앙지법, 12세 의붓딸 13년 성폭력→법원의 사회적 책임 재조명

서윤아 기자
입력

성폭력 피해의 그림자가 13년 동안 한 가정에 드리워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2세 의붓딸에게 2천여 회에 걸쳐 성폭력을 저지른 의붓아버지에게 3억원의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배경에는 피해자의 끝없는 고통과, 이를 결국 알게 된 친모의 비극적인 마지막 선택이 자리해 있다. 대한민국 사회 내 뿌리 깊은 가정 내 아동·청소년 성폭력의 현실, 그 긴 터널에서 겨우 한 줄기 빛이 비친 셈이다.

 

수사는 피해자의 진술과 의붓아버지인 A씨의 범행 사실에 대한 명확한 증거 확보로 시작됐다. 피해자는 2008년 만 12세 무렵부터 2020년까지 서울 등지 자택에서 총 2천92회에 걸친 장기간 성폭력에 시달렸다. 범죄는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반복됐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아 일상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 놓였다. 뒤늦게 사건을 안 친모 역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A씨는 이미 2024년 2월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현재 수감 중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지원한 성폭력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3억 원의 위자료가 인정됐다 / 연합뉴스
대한법률구조공단이 지원한 성폭력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3억 원의 위자료가 인정됐다 / 연합뉴스

이 사건이 또 다른 관심을 끌었던 지점은 민사 소송에서 이례적으로 인정된 3억원의 위자료다. 일반적으로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 민사소송에서 인정되는 손해배상 액수는 1억원 이하가 많았다. 그러나 대한법률구조공단은 피해자의 심리적 상흔, 장기간 범죄 지속, 회복 불가한 정신적 장애, 주변인들의 극단적 선택 등 복합적 피해 양상을 근거로 고액 손해배상 청구를 결정했다. 법원도 “반인륜적 범행과 피해자의 회복 곤란 상태, 범죄 지속성을 모두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그동안 다양한 성폭력 사건에서 위자료 수준의 한계가 논란이 돼왔다. 공단 소속 변호사는 “영미권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일반적이지만, 국내도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며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로써 법원은 단순한 범죄에 대한 처벌을 넘어 피해자의 권리 구제에 한층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반면, 이 판결이 하나의 선례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과제가 남았다. 피해자 회복 지원 체계 마련, 법률구조공단 등 공적기관의 지원, 심리 치료와 사회 복귀를 위한 제도적 연결 고리 역시 더 촘촘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아직도 많은 피해자들이 침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번 판결이 고액 위자료 인정을 비롯해 성폭력 피해자의 실질적 구제와 2차 피해 예방, 그리고 사회 전체의 경각심을 환기하는 계기로 확장될지, 남겨진 숙제가 만만치 않다.

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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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의붓아버지#대한법률구조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