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반도체 수출 틀어쥔 미국”…엔비디아 경고에도 첨단 규제 고수→AI 패권 경쟁 긴장 고조
도심의 매연과 환하게 물든 저녁 하늘이 교차하는 뉴욕. 이곳 백악관의 회의실에서는 첨단 반도체 칩 하나를 둘러싼 세계의 흐름이 또 다른 역사의 곡선을 그리고 있다. 미국은 첨단 기술에서의 우위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의 절실한 호소조차 잠시 흘려보내며 굳건히 대중국 수출 규제 정책을 고수하는 입장이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서 인공지능을 총괄하는 스리람 크리슈난 수석 정책 고문은, 현지 시간으로 21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존경심이라는 단어로 젠슨 황의 경영자로서의 무게감을 평가하면서도, GPU 등 고성능 반도체가 중국에 유입될 때 국제 시장을 뒤흔들지 모를 안보 리스크는 여전히 미 의회의 초당적 공감대임을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기부터 시작된 이 규제는 한 국가의 산업 안보를 넘어, 동맹과 경쟁국 간 장기적 기술 전쟁의 서막이었다.

크리슈난 고문은 대중국 수출 규제 속에서도 다른 우방 국가들을 향해선 미국 기술의 공유와 공급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와의 협력 역시 미국이 엄격한 보안과 이전 관리 원칙을 놓지 않도록 설계돼 있다. 그는 “이러한 사업 역시 미국이 기술의 방향키를 쥔 채,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미국식 산업 질서 위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기술 이전 통제의 뿌리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AI 시대의 핵심인 반도체 GPU가 있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같은 날 타이베이에서 열린 글로벌 미디어 간담회에서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한이 실패한 정책임이 입증됐다”며, H20 제품까지 출하를 막은 결과 수십억 달러의 재고 손실이 발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컴퓨팅 시장”이라며, 향후 AI 시장 규모만 5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글로벌 AI 개발자의 절반이 중국에 있다는 현실, 그리고 그들이 엔비디아 등 미국 기술로 미래의 아키텍처를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 젠슨 황의 발언에는 비단 사업가의 손실만이 아닌 기술 문명의 속도전에서 소외될 수 있단 두려움도 어른거렸다.
그러나 미국의 뚜렷한 기조는 국제 증시에서도 파장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연이은 수출 규제에도 중국 내 로컬 칩 기업, 예컨대 화웨이와 같은 거인의 굴기가 가속되고 있다며, AI 및 반도체 생태계의 새로운 분열과 지역화, 무엇보다 미국이 기술 패권의 불꽃을 더욱 세게 쥐게 된 정세를 주목했다. 엔비디아와 같은 실리콘밸리의 대표 기업마저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게 된 현실은, 미중 기술 전선의 한복판에서 기업·국가 구도를 한층 더 복합적으로 얽히게 한다.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는 동맹국들에도 즉각적인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캐나다, 일본, 유럽 등 미국 우방 역시 기술 안보라는 단어 아래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뜻을 모으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미·중 간 쏟아지는 파장 속에서 신중한 대응 전략과 함께, 기술 자립·안보의 무게를 다시 가늠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계는 다시 한번 기술이 외교와 안보의 중심이 됨을 절감하고 있다. 미국의 흔들림 없는 규제 기조와 중국의 대항마 육성, 그리고 이에 촉발된 글로벌 기업의 도전은, 인공지능과 반도체라는 명제를 둘러싼 21세기 신냉전의 현주소를 비춘다. 긴장과 변화, 그리고 패권을 둘러싼 한줄기 서사에서, 국제사회는 각자의 방향으로 또다시 길을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