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절차 위법성 논란"…의협, 윤석열 고발 파장 주목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형사 고발전으로 번지며 보건 의료 시스템 전반의 불안 요인이 커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해 의료체계 왜곡과 현장 혼란을 키웠다고 주장하며, 해당 정책 결정 핵심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의료 인력 수급 전략을 둘러싼 이번 사태가 향후 의료 접근성, 전공 선택, 지역·필수의료 인력 구조 등 국내 보건의료 생태계 재편 논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한의사협회는 12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을 추진한 책임이 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과 보건·교육 정책 관련 전직 고위 공직자 4명을 형사 고발했다고 밝혔다. 고발 대상은 윤석열 전 대통령,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전 복지부 차관, 이관섭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 등 5명이다.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이들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국회증언감정법 제14조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한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규모와 시점을 정하는 과정에서 의사 수급 추계의 과학성과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의료계와의 사전 협의 없이 정책을 강행해 의료현장에 심각한 파급을 초래했다고 보고 있다.
이번 형사 고발은 앞서 의협이 제기한 국민감사청구 절차 이후 한 단계 더 수위를 높인 대응이다. 의협은 지난 5월 감사원에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이 절차적 위법 소지가 있고 행정정책의 정당성과 투명성을 훼손했다는 취지로 감사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지난달 27일 감사 결과를 공표하며 정부의 의사 부족 규모 산정 방식과 정책 추진 과정 전반에 절차적 정당성이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감사원은 정책 근거가 된 의사 수급 추계의 논리적 정합성이 부족했으며, 이런 불완전한 추계에 기반해 증원 규모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와의 협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은 점, 지역별·대학별 정원 배정의 타당성과 형평성 검토가 부족했던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의료 인력 정책의 과학적 설계와 이해관계자 조율이라는 기본 전제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의협은 이 같은 감사 결과가 정책 추진 과정의 위법성과 책임 소재를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강조한다. 김택우 회장은 감사 결과에 따르면 위법한 절차에 따라 의료정책이 추진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수사기관이 관련자들의 범죄 혐의를 철저히 규명하고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과 환자 안전을 좌우하는 인력 정책을 졸속으로 추진한 결과, 정책 신뢰가 훼손되고 현장의 혼란이 장기화됐다고 성토했다.
의협은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이 법적 절차와 정당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강행됐다고 규정하면서, 그 여파로 의료현장이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한다. 전공의 이탈과 필수의료 공백 논란 등으로 환자와 국민의 불편이 2년째 이어지고 있고, 수련 환경 악화와 진로 불확실성으로 젊은 의사와 예비 의료인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의협은 그럼에도 정부가 정책 실패 책임을 명확히 묻지 않고, 관련자 문책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형사 고발은 의료 인력 공급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단순한 정책 협의 단계를 넘어 법적 공방 국면으로 전환됐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그동안 인공지능 진단 보조,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지역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 등과 연계해 의사 수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반면 의료계는 첨단 의료기술 도입과 업무 재설계, 전자의무기록 고도화로 업무 효율을 높여도 충분한 영역이 있는데, 단순 증원 중심 접근은 필수의료와 지역 의료 불균형을 되레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국제적으로도 의료 인력 정책은 고령화 속도, 디지털 헬스케어 수준, 원격의료 허용 범위에 따라 상이한 전략이 적용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의사 수를 늘리는 동시에 간호사·보건의료기사 등 다직종 협업 모델을 강화하고 있고, 원격 모니터링과 AI 보조 시스템을 활용해 대도시 쏠림을 완화하려는 시도를 병행한다. 한국에서는 관련 제도와 인프라 정비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규모 정원 증원을 먼저 추진했다는 점이 구조적 논쟁의 핵심 축이 되고 있다.
의협은 형사 고발과는 별개로 피해 의료인들을 모아 공동 민사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단체 내 법제팀이 현재 배상액 규모를 검토하고 있으며, 수억 원대 이상으로 청구액이 설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법적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의대 정원 정책뿐 아니라 향후 보건의료 인력계획 수립 과정에서 정부 책임성과 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번 형사 고발이 실제 수사와 재판 단계로 이어질 경우, 향후 의사 공급 계획과 의료 인력 재배치 논의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산업계와 의료현장은 이번 갈등이 단기 정치적 공방에 그칠지, 아니면 데이터와 절차에 기반한 보건의료 인력 정책 재설계의 계기가 될지를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