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로봇 행세”…이란 전시 논란, AI 과장 홍보에 제동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실제 기술 수준을 넘어선 과장 연출이 산업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란의 한 산업 기술 박람회에서 공개된 첨단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실은 사람이 분장을 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로봇 공학과 AI 기술을 둘러싼 홍보 윤리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로봇 기술 경쟁의 과열과, 그에 편승한 과장 마케팅이 빚은 단면으로 보고 있다.

이란 IT 전문 매체 줌잇 등 현지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란 키시섬에서 열린 키시 이녹스 테크 엑스포 행사장에 남녀 형태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해 관람객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두 로봇은 0과 1로 구성된 이진 코드 패턴 의상을 착용하고, 기계적인 동작을 흉내 내며 스스로를 첨단 인간형 로봇으로 소개했다. 특히 여성형 로봇은 자신을 미스 데이터라고 부르며 블록체인 공간에서 살고 공유된 데이터 코드로 작동한다고 설명해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관람 장면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소셜 미디어와 IT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면서 정체에 대한 의문이 빠르게 제기됐다. 눈을 자연스럽게 깜빡이는 모습과 호흡에 따른 가슴과 어깨 움직임, 피부에 보이는 여드름 자국이 포착되며 실제 로봇이 구현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간적 디테일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팔과 손의 움직임에서도 모터 기반 로봇 특유의 단계적 동작이 아닌 인간 특유의 유연한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현장 참가자들 사이에서 인간 연기자가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논란 끝에 로봇처럼 보였던 두 인물이 실제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착용형 의상과 마스크로 분장한 배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교한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을 선보인 것처럼 연출한 이 이벤트는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며 대중적 조롱과 비판을 동시에 불러왔다. 일부 온라인 이용자들은 로봇 개발 난이도를 감안하면 동작만 봐도 사람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며, 과장된 기술 시연이 이란의 산업 기술 수준을 오히려 깎아내렸다고 평가했다.

이란 당국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즉각 선을 그으며 진화에 나섰다. 정부나 전시회 공식 주최 측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며, 민간 기업이 자체 홍보를 목적으로 연출한 퍼포먼스라고 해명했다. 특히 사람을 로봇으로 분장시키는 발상과 기획은 정책 당국과 관련이 없다고 강조하며 국가 차원의 기술 과장이라는 비난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번 사건은 로봇과 AI 기술이 각국에서 전략 산업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과장된 시연과 실제 기술력 사이의 간극이 가져올 신뢰성 문제를 다시 부각시켰다. 전 세계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은 정교한 관절 구동, 실시간 환경 인식, 자연어 처리 기술까지 복합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에 개발 난도가 높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나 일본, 유럽 일부 연구소를 제외하면 완성도 높은 인간형 로봇을 상용 수준으로 선보인 사례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처럼 사실상 코스프레에 가까운 연출을 최첨단 로봇처럼 포장하는 행태는 IT 업계 전반의 신뢰를 해칠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전문가들은 특히 AI와 로봇을 접목한 제품이 의료, 제조, 국방 같은 고위험 분야에 확산되는 시점에서, 기술 수준과 활용 범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기능보다 앞선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과장 시연은 투자자와 소비자는 물론 규제 당국의 판단을 왜곡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AI 관련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규제 논의가 진행 중이며, 일부 국가는 알고리즘 성능 검증과 설명 의무를 법제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번 사태는 로봇과 AI를 둘러싼 홍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술 윤리와 투명성에 대한 글로벌 기준이 중요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산업계는 사람 분장을 로봇으로 제시한 이른바 가짜 휴머노이드 사태가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지, 아니면 과열된 기술 마케팅 관행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