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 83년 만에 복원”…연덕춘, 일본오픈 우승 기록 정정→골프계 울림
1941년, 일제강점기 속 수많은 제약을 딛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연덕춘의 이름이 마침내 83년 만에 올바로 기록됐다. 굳게 닫혔던 역사의 문이 열린 순간, 연덕춘의 우승 트로피 복원식장에선 긴장과 환호가 교차했다. 침묵보다 묵직했던 박수와 함께, 한국 골프 1호 프로의 존재감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대한민국 프로골프의 뿌리라 불리는 연덕춘은 1941년 일본프로골프 최고 권위의 일본오픈에서 4라운드 합계 2오버파 290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국적과 이름 대신 일본식 이름 ‘노부하라 도쿠하루’로 공식 기록에 남아야 했던 아픔이 뒤따랐다. 2위에 3타 앞선 기록, 그리고 첫 조선인 우승의 쾌거조차 기록에서 사라져 있었다.

한국프로골프협회와 대한골프협회는 지난해부터 일본골프협회에 연덕춘의 국적·이름 정정을 공식 요청했다. 올해 4월, 일본골프협회는 내부 만장일치로 83년 만에 기록 정정을 결정했다. 야마나카 히로시 최고 운영 책임자는 "정치적 배경 때문에 일본 이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며, “역사를 바로잡으려 결정했다”고 밝혔다.
연덕춘은 1935년 일본오픈에 첫 도전했으나 컷오프됐고, 1941년 드디어 우승을 거머쥐었다. 손기정과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존재를 국제 무대에 알린 상징적 인물이기도 했다. 이후 1958년 KPGA 선수권 초대 우승, 1968년 협회 창립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요한 의미가 더해진 이번 복원식에서 6·25 전쟁 중 유실됐던 일본오픈 우승 트로피가 최초 공개됐다. 복원된 트로피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된다. 또한 연덕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0년부터 KPGA 최저타수상을 ‘덕춘상’으로 시상하고 있다.
김원섭 KPGA 회장은 “연덕춘 전 고문의 역사 복원은 개인을 넘어 한국 골프의 정통성이 되살아난 상징적 사건”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골프클럽에서 첫 스윙을 날린 연덕춘은 2004년 별세 전까지 평생을 한국 골프 발전에 바쳤다. KPGA와 KGA 측은 그가 되찾은 이름과 국적이 골프계와 후배 선수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승의 영광 뒤편에 가려졌던 이름, 그리고 긴 세월을 건너온 진실. 잊혀진 빛을 되살린 이번 기록 정정은 억압을 넘어 자존을 지키고자 했던 한 인간의 삶을 다시 한번 조명한다. 지난 속절없는 시간 속에서도 이름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마음은 오늘날 한국 골프를 바라보는 모두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