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AI 예산 중복 검토해야” 국민의힘, 민주당은 “분산 필요” 맞불

조민석 기자
입력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시각차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 옮겨붙었다. 인공지능 예산에서 국립대 육성사업, 광복회 관련 사업까지 핵심 쟁점마다 이해가 엇갈리며 정국 갈등이 예산 심사로 번지는 모양새다.

 

1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는 이틀째 회의를 열어 내년도 예산안을 심사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비 심사를 거친 인공지능 혁신펀드와 공공 AX 예산,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국립대학 육성사업, 광복회의 독립운동사 학술연구사업 예산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 관련 사업이 타 부처 사업과 유사하거나 중복될 소지가 크다며 강한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특정 기술 쏠림을 막기 위한 부처 간 분산 전략이라고 맞서며 정부 원안 유지를 주장했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은 회의에서 인공지능 관련 예산을 예산안의 핵심 축으로 지목했다. 조 의원은 이틀간의 자료 검토를 언급하며 “이틀 정도 검토해보니 이번 예산의 큰 꼭지 중 하나가 AI·AX 관련 예산이라는 게 명확해졌다”며 “큰 그림을 보고 이게 적절한지, 다른 부처 사업과 중복되지 않는지 검토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획재정부를 향해 인공지능 관련 예산을 부처별로 재정리한 자료를 소위에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재관 의원은 부처별 분산 편성의 취지를 강조하며 야당의 ‘중복’ 문제 제기에 반박했다. 이 의원은 “AI 관련 펀드를 한 부처에서 관장했을 경우 특정 기술에 예산이 집중되는 우려를 막기 위해 각 부처에 분산해서 하는 것”이라며 “중복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당 노종면 의원도 “나중에 자료가 준비되면 몰아서 하고, 지금 개별 항목을 심사할 때는 넘어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양측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야당이 구조적 중복 문제를 전면 재검토하자고 나선 반면, 여당은 기술편중을 막는 분산 전략이라고 맞받아치면서 인공지능 관련 예산은 보류 항목으로 분류됐다. 예산 구조를 둘러싼 철학 차이가 소위 차원의 조정에 난항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서울대학교 10개 만들기’를 구체화하기 위한 국립대학 육성사업 예산도 쟁점이었다. 내년도 국립대학 육성사업 예산은 8천735억5천만 원 규모로 편성돼 있다. 국민의힘은 지방국립대 경쟁력 약화의 원인을 재정 투입 문제로만 볼 수 없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고, 민주당은 재정 격차 해소 없이는 교육 여건 개선이 어렵다며 공약 이행 예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은 “그동안 지방국립대에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경쟁력 약화는 재정 문제가 아닌 지방 취업과 정주 여건 등 종합적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지역사회와 융합된 교육 효과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사립대가 훨씬 앞서 있어 국립대 지원은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 청년 유출과 일자리 부족 등 구조적 요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립대 재정 지원만으로는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재정 불균형 수치를 제시하며 맞섰다. 노 의원은 “2024년 기준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비교하면 서울대는 6천200만 원, 지방 거점대 평균은 2천500만 원”이라며 “이런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으로, 투자 없이는 교육 여건이 나아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수도권과 지방 거점국립대 간 교육비 격차를 해소해야 공약 취지가 살아난다는 논리다.

 

국립대학 육성사업 예산도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심사가 보류됐다. 여야가 지방대학 정책의 방향부터 진단까지 엇갈리면서, 대통령 공약 이행 여부를 둘러싼 공방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광복회의 독립운동사 학술연구사업 관련 예산 역시 여야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광복회 선양 행사 지원비가 약 8억5천만 원 규모로 책정되면서 증액 폭을 둘러싼 논쟁이 가열됐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선양 행사 지원비가 전년 대비 약 1천600퍼센트 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치적 편향 의혹을 제기했다. 최 의원은 “다른 보훈단체가 보기에 특정 대통령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 보상처럼 주고 또 주는구나 하는 왜곡된 인식이 생길 확률이 크다”며 “정책과 무관한 선심성 예산은 삭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에서 광복회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다는 점을 겨냥해 내년 예산 증액을 ‘정치적 보상’ 성격으로 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민규 의원은 언론 정정보도를 근거로 반박했다. 박 의원은 “광복회가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언론보도가 잘못됐다는 정정보도가 이달 6일 나왔다”며 “삭감이 아닌 원안 유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위 보도 정정 이후에도 정치적 의심을 근거로 예산을 줄여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광복회 관련 예산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보류됐다. 독립운동사 연구와 선양 사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명시적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편성 과정과 증액 배경을 둘러싼 해석 차이가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온 셈이다.

 

이날 예산소위는 인공지능 예산, 국립대학 육성사업, 광복회 사업 등 굵직한 쟁점 예산 상당수를 결론 없이 미뤘다. AI 산업 전략과 지방대학 정책, 보훈 단체 지원 방식이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와 맞물리면서 예산 심사 과정이 정쟁의 무대로 옮겨졌다는 평가도 뒤따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후 회의에서 보류된 항목들을 다시 상정해 부처별 자료와 추가 논의를 거칠 계획이다. 여당과 제1야당이 예산 구조와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이견을 어디까지 조율할 수 있을지에 따라, 내년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또 한 차례 정치적 격돌이 이어질 전망이다.

조민석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이재명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