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역할 변화 논의 본격화”…조현·루비오 첫 한미외교장관회담, 동맹 현대화 시동

대미 외교의 정상화가 정치권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한 가운데,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31일 워싱턴DC에서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한미외교장관회담을 가졌다. 작년 12·3 계엄사태 이후 맞은 한미 간 대화 단절과 긴장 속에서, 이번 회담은 양국 외교의 정상화와 한미동맹 현대화의 분기점이 됐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조현 장관은 회담을 마친 뒤 “건설적이고 좋았다”며 이재명 정부의 외교 철학인 한미동맹, 한미일 협력, 한반도 긴장완화 기조를 미국 측에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두 장관은 북한 비핵화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대북 공조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북미 간 핵군축 대화 시 한국이 배제될 수 있다는 이른바 ‘한국 패싱’ 우려도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따른다.

다만 북한 문제의 접근법에서는 미묘한 온도차도 감지됐다. 조현 장관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강조한 반면, 미국 국무부는 회담 자료에서 대북 제재 이행과 북러 밀착에 대한 우려도 거론해 시각 차가 드러났다.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무부는 양국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전한 반면 한국은 ‘인도·태평양 평화와 안정’에 그쳤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신중함도 읽힌다.

이번 한미외교장관회담에서는 특히 ‘동맹 현대화’가 양국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였다. 외교부는 “두 장관이 변화된 역내 안보와 경제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현대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높여나가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대북 대응 역할에서 중국 견제까지 임무를 확대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 현대화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의 역할·성격 재정립을 수반할 것이란 분석이 정치권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 역시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은 여러 요인으로 변화할 수 있다고 본다”며, “국제정세 변화, 기술 혁신, 중국의 전략적 역할 확대” 등을 주요 요인으로 짚었다. 미국이 요구해온 주한미군 역할 변화 논란에 대해 한국 정부가 실질적 변화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 관계자는 “미국 입장도 이해한다”며 미국의 요구에 일정 부분 호응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역할 조정’ 문제가 앞으로 한미 외교라인 간 집중 협상 대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달 안에 열릴 한미정상회담에서 포괄적 논의가 전망되고, 주한미군이 남중국해 등 역외에 투입될 경우 한반도 방위 공백, 한중관계 부담 등 복합 변수도 떠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갈등 조정 시 신중한 행보가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 정치권은 주한미군 역할 확대의 국내 안보파장과 미국정책 변화의 균형 있는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외교부는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와 함께 한반도 안보와 국민 여론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공식 입장을 강조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향후 실무협의 및 정상외교를 통해 세부 쟁점을 조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