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AI가 수입식품도 골라낸다…식약처, 심사 5분대로 단축해 규제혁신 가속

윤지안 기자
입력

인공지능 도입이 식품과 의약품 안전관리 패러다임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수입 단계부터 통관 심사, 위험예측, 온라인 불법광고 단속까지 AI 기반 시스템을 잇달아 적용하면서 행정 효율과 규제 정밀도가 동시에 높아지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반복 서류 심사에 머물던 수입검사가 데이터 기반 위험관리 체제로 전환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올해 공공 AI 정책 우수사례로 평가된 만큼, 내년 예고된 AI 검사관 도입이 국내 식품·의약 안전 규제 혁신 속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수입식품 전자심사24는 올해 위생용품인 구강관리용품까지 품목을 넓히며 수입안전 전자심사24로 고도화됐다. 적용 대상은 7월 기준 식품첨가물, 농축수산물, 가공식품, 건강기능식품, 일부 기구와 용기·포장, 구강관리용품 등으로 수입 식품군 전반을 포괄한다. 과거 사람이 하던 약 270종 서류 검증을 시스템이 자동 처리하도록 설계한 것이 핵심이다.

이 시스템은 수입신고 시 제출되는 서류 데이터를 표준화해 수집하고, 신고 유형별로 요구되는 요건 충족 여부를 자동 대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통관 기록, 품목코드, 원산지, 사용 용도 등 구조화된 정보를 규정과 매칭해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구조다. 사람이 일일이 문서를 열어보던 방식보다 오류율을 줄이면서 처리 속도를 크게 높였다. 식약처는 2024년 한 해 동안 8만158건을 전자심사24로 자동 수리했고, 올해는 12만 건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 전자심사 확대는 수입 절차의 시간 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서류 검사에 평균 2일이 걸리던 수입심사가 최대 5분 내에 끝나면서 야간과 주말에도 처리가 가능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일 통관이 가능해져 냉장·냉동창고 보관료, 물류 지연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신선식품이나 기능성 제품의 출시 일정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간 13만 건이 수입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구강관리용품까지 전자심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생활밀착형 위생용품의 통관 리드타임도 줄어드는 효과가 기대된다.

 

서류 자동심사와 별개로, 식약처는 AI 기반 수입식품 위험예측 검사시스템을 통해 검사 대상을 정교하게 고르는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과거 부적합 사례, 원재료 구성, 제조국, 위생상태 등 수입식품 검사 정보에 해외 환경정보와 위해정보를 결합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예측 모델이다. AI가 각 수입 건마다 부적합 발생 가능성을 점수화해 위험도가 높은 물량을 무작위검사 후보로 자동 선별하는 구조다.

 

기존에는 정해진 비율에 따라 무작위로 표본을 뽑거나, 제한된 인력의 경험과 직관에 의존해 위험품목을 선정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AI 도입으로 특정 국가·시기·품목에서 반복되는 부적합 패턴, 계절별 위생 문제, 원재료별 위해요인 등을 동시에 고려하는 다차원 분석이 가능해졌다. 식약처는 식품안전정보원과 함께 품목별 위해요소 특성을 반영한 예측모델을 단계적으로 고도화하고 있으며, 적용 대상 품목군을 넓혀 수입식품 검사 정확도와 효율을 함께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이 시스템은 12월 초 열린 2025년 공공 AI 대전환 챌리지 우수사례 왕중왕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기술성과 정책 효용을 모두 인정받았다.

 

해외에서도 식품·의약 규제기관의 AI 활용은 점차 확대되는 흐름이다. 미국과 유럽 규제당국은 의약품 심사 문서 자동 분류, 이상사례 신호 탐지, 공급망 리스크 분석 등에 AI를 시범 도입하고 있다. 국내 식약처가 수입식품 심사와 위험예측에 본격 적용하면서, 규제기관 간 AI 활용 경쟁도 본궤도에 진입하는 양상이다. 다만 글로벌 차원에서는 알고리즘 투명성과 데이터 품질 확보 문제, 국가 간 데이터 교류 기준 정립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식약처는 내년에 AI 검사관, AI 이물조사관, AI 위해예측관을 도입해 이러한 시스템을 조직 단위 업무 프로세스로 안착시킬 계획이다. AI 검사관은 수입과 유통 단계에서 대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사 우선순위를 정하고, AI 이물조사관은 식품 내 이물 신고 사진과 설명을 분석해 유형을 자동 판정하는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AI 위해예측관은 식중독, 잔류농약, 미생물 오염 등 위해요인을 종합적으로 예측해 현장 점검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으로 개발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소비자 보호를 위한 AI 활용도 강화된다. 식약처는 AI로 생성한 가짜 의사, 약사 등 전문가 이미지를 활용해 일반식품을 마치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처럼 홍보하는 온라인 광고를 집중 단속 중이다. AI 기반 이미지·텍스트 분석 기술을 활용해 특정 플랫폼에서 반복되는 패턴, 의학용어 남용, 과장 표현 등을 조기에 포착하고, 알고리즘이 의심 수준을 높게 판단한 게시물은 인력이 추가 검증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실제 식약처는 지난 15일, 온라인에서 AI가 생성한 전문가 이미지를 이용해 식품을 광고하거나 일반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든 사례 16건을 적발해 수사 의뢰 및 행정처분을 요청했고, 해당 게시물 접속을 차단했다. 내년에는 온라인 AI캅스 체계를 통해 의료용 마약류와 의약품의 불법 유통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차단하는 시스템도 본격 가동할 계획이다.

 

식중독 대응에서도 AI가 새로운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식약처는 집단 설사, 구토 등 증상 패턴과 발생 지역, 계절, 신고 시점, 섭취 음식 정보를 결합해 원인균과 의심식품을 자동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과거 사례 데이터와 기상·환경정보까지 반영하면, 현장 조사 전에 잠정적인 원인 가설을 제시해 역학조사 속도와 정확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예측 결과는 의심 식품 회수와 검사 범위 설정, 신속 경보 발령 기준을 정하는 보조 도구로 활용될 전망이다.

 

규제 측면에서는 AI가 공공안전 강화를 위한 수단인 동시에, 새로운 규제 대상이기도 하다. 식약처는 AI가 자동 선별한 수입검사 대상이나 불법광고 의심 건에 대해 최종 판단은 사람이 내리도록 하는 이중 구조를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알고리즘의 편향과 오류가 국민 건강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모델 개발 단계에서부터 설명 가능성과 검증 절차를 강화하고, 데이터 편중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입식품 전자심사와 위험예측 시스템이 단기적으로는 통관 절차 단축과 인력 효율화를 가져오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위험군에 대한 집중관리와 사전예방 체계 구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반복·단순 업무를 AI가 떠안는 대신, 검사 인력이 고난도 위해분석과 현장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산업계는 수입과 유통 현장에서 새로운 규제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지안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식품의약품안전처#전자심사24#수입식품위험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