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0대로 추락”…코스피, 중동 충격에 주요주 약세→에너지·해운주 반등
분위기는 먹구름과 닮아 있었다.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 소식이 아침을 흔든 6월 23일, 국내 금융시장은 깊은 변동성의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코스피 지수는 아침 9시 23분에 이미 2,975.29로 주저앉으며, 전일에 힘겹게 넘었던 3,000선 아래로 고꾸라졌다. 외국인이 2,224억 원, 기관이 1,370억 원을 내던진 자리에 개인 투자자만이 3,990억 원을 부여잡았다.
금광처럼 빛나던 반도체주는 어느덧 어둑해졌다. 미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공장에 대한 장비 수출 제한 검토에 나설 수 있다는 외신 한 줄이 글로벌 공급망에 불안이라는 파동을 일으켰다. 그 불안은 곧바로 숫자가 돼, 삼성전자 2.69%, SK하이닉스 2.72% 하락이라는 이정표를 새겼다. 삼성바이오로직스, LG에너지솔루션, 현대차, HD현대중공업까지 시가총액 상위주는 하나둘 낙폭을 키웠다.

환율은 새벽 바람처럼 요동쳤다. 원화의 가치는 9.4원 하락해 1,375.0원으로 출발했다. 세계를 뒤흔든 중동의 불길은 뉴욕증시에도 번져, 모호한 혼조세로 남았다.
그러나 위기 속 희비는 엇갈렸다. 방위산업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풍산, 현대로템 등은 국방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등에 업고 동반 상승했다. 특히 방위 물자와 직결된 기업들의 주가는 전장과도 같이 빠르게 치솟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하면서 물류와 원유 수급에 대한 우려는 정유·에너지·해운 업종을 끌어올렸다. 한국석유 21.11%, 대성에너지 19.43%, SK가스 7.79% 등 관련 종목은 단숨에 강세장을 이루었다. 흥아해운, STX그린로지스, HMM은 물동량 흐름 전망과 함께 오름세를 이어갔다.
한편, 시총 상위 블루칩이 휘청이는 사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 도입 기대감에 카카오페이가 10.55% 급등하며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업종별로도 의료·정밀기기, 전기·전자, 섬유·의류가 약세 위주였지만, 기계·장비, 건설, 비금속 업종에서 희미한 상승의 불씨가 번졌다.
코스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전 9시 23분, 774.81로 2.11% 내리며 불안의 기운을 삼켰다. ‘알테오젠’, ‘에코프로비엠’, ‘HLB’, ‘에코프로’ 등 주요 성장주의 약세가 두드러진 가운데, 일부 업종만이 소폭의 회복세를 보였다. 외국인과 기관이 쏟아내는 매도의 물결을 개인이 고요히 받아 안았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중동 개입은 단기적으로 리스크를 확장할 소지가 크다”며,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와 함께 코스피엔 조정 압력이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격랑을 맞이한 시장은 지정학적 불안과 반도체 산업 제재, 나아가 유가·물류 비용 급등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한층 더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갈 전망이다. 투자자들은 거센 파도 위에서 신중함과 날카로운 시선으로 변동성에 대비해야 할 시절을 맞는다. 다음 주에는 국제 유가와 글로벌 산업 공급망, 추경 준비 상황 등 일련의 변수가 이어질 예정이다. 시장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변화의 결을 세밀히 읽고 준비하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