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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강요는 사실상 국부펀드 운영”…WSJ, 트럼프 대미 투자 요구 비현실성 지적

장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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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에 요구된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련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WSJ 사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한일 투자액 규모가 지나치게 크며, 그 운용 방식까지 미국 대통령 재량에 맡기는 것은 사실상 국부펀드와 다름없다고 21일(현지시간) 비판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 인하 조건으로 한국에 3천500억 달러, 일본에 5천500억 달러의 투자를 각각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발표해 진짜와 과장된 것을 구분하기조차 어렵다”며, 이 같은 투자가 실현 가능성은커녕 미국 거버넌스와 재정에 심각한 의문을 던진다고 지적했다.

파이퍼샌들러의 자료를 인용해 WSJ은 한국이 제시받은 3천500억 달러 포괄투자금은 향후 3년간 국내총생산(GDP)의 6.5%에 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역시 양해각서(MOU)에 따라 2028년까지 매년 1천830억 달러, 즉 연 GDP의 4.4%를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신문은 “차라리 산업투자 대신 국방비 증액이 현실적이지 않겠느냐”면서, 실제로 한일 양국은 이미 매년 GDP의 2~3% 수준을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고 비교했다.

 

문제는 이러한 자금 운용이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의 재량 아래 이뤄진다는 구조다. WSJ은 “의회 승인이나 법적 장치도 없이 운영되는 사실상의 국부펀드”라며 미국 정부가 동맹국들로부터 모은 막대한 자본이 어떻게 쓰이게 될지에 대한 투명성 우려를 제기했다. 아울러 러트닉 상무장관과 베선트 재무장관 등 미 행정부 인사들이 거액의 자금을 대통령 및 공화당 인사들과 연계된 계정에 투자 압박을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한편, WSJ은 “한일 정부가 유권자와 의회에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며, 특히 일본의 신임 총리가 소수 내각 속에서 이 정도의 금액을 정부간 협정으로 집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미국에서 대통령이 관세 무기를 동원해 동맹 상대국에 돈을 모아 원하는 대로 쓴 전례가 없으며, 이런 요구가 역대 행정부의 전통에도 어긋난다”고 진단했다.

 

미국 정치권 내부 반응 역시 주목된다. 신문은 “만약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이와 같은 요구를 했다면 공화당은 당장 청문회와 조사를 요구했을 것”이라며, 향후 트럼프 투자 펀드도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세협상과 대미 투자 압박을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WSJ의 이번 사설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대한 양국 정치권과 시민사회, 미국 내 여론의 추가적인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관련 투자 요구와 집행의 투명성·합법성 여부를 두고 본격적인 점검에 나설 전망이다.

장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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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월스트리트저널#대미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