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캐스팅보트"…통일교, 20대 대선 앞두고 여야 동시 접촉 정황
대선을 앞둔 정국과 종교계의 이해가 충돌했다. 통일교가 20대 대통령선거를 계기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했다는 정황이 민중기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여야를 향한 조직적 접근과 정치자금 의혹이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11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은 2022년 2월 28일 통일교 핵심 간부와의 통화에서 20대 대선 국면을 언급하며 "우리가 그래도 캐스팅보트를 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단 건 고무적이고 우리 조직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불과 아흐레 앞둔 시점으로, 교단 조직력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윤 전 본부장은 같은 통화에서 통일교가 그해 2월 개최한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를 언급하며 "그때 펜스하고 윤을 브릿지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펜스 정도는 붙여줘야 저쪽에 신세를 졌다라고 생각을 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거는 액션 해줬다"고 설명했다. 통일교가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만남을 성사시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뉘앙스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한반도 평화 서밋 행사는 2022년 2월 13일 서울 롯데시그니엘 호텔에서 열렸다. 통일교 산하 국제행사 형식을 취한 이 행사에는 펜스 전 부통령이 참석했으며, 윤석열 당시 후보도 현장을 찾아 펜스 전 부통령과 대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교가 교회뿐 아니라 학교와 기업체 등을 산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윤 전 본부장은 교단의 사회적 영향력을 대선 국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본부장은 통화에서 여야 대선 캠프를 모두 상대로 관계를 넓혀갔다는 취지도 밝혔다. 그는 통일교의 정점인 한학자 총재의 결정을 거론하며 "어머님 결정하시면 저희는 움직입니다. 대신 어렵더라, 양쪽 접근해 보니까 통일교 리스크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다행히 이제 3∼4주 전에 Y로 하면 좋겠다 그랬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양측을 접촉한 뒤, 한 총재 의중에 따라 최종적으로 윤석열 후보 측으로 방향을 정했다는 취지로 읽히는 부분이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이 같은 녹취 내용을 통일교와 국민의힘 간 유착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특검팀은 통일교 측이 대선 전후로 특정 정치세력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인적·재정적 자원을 집중했다는 의혹에 수사력을 모으는 상황이다.
그러나 윤 전 본부장 측은 한 정파를 겨냥한 조직적 지원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윤 전 본부장 측은 전날 열린 결심공판에서 "통일교의 평화주의 이념에 따라 여러 정파를 아우르려면 당시 국민의힘과 민주당 등 대선 후보가 참석하는 게 절실했다"고 주장했다. 여야 모두를 행사에 끌어들여 교단의 평화 메시지를 확산하려는 과정에서 다양한 접촉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반도 평화 서밋에는 야권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도 이름을 올렸다. 위성락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 실용외교위원장(현 국가안보실장)과 김현종 국제통상특보단장은 행사를 계기로 펜스 전 부통령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통일교 측 인사들과 이들 사이에도 외교·안보 관련 논의가 오간 정황이 포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전 본부장은 행사 개최 전인 2022년 1월 25일 통화에서도 양당 후원회장을 통한 자금 지원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통일교가 섭외하려는 미국 측 유력 인사 명단을 논의하면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핵심과의 교류를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를 거론하며 "2019년부터 여권 최고위급 인사들과 차근차근 인연을 쌓아왔다"고 말했다. 다만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통일교에 대한 국내 여론을 의식해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였다는 평가도 곁들였다.
반대로 국민의힘과 관련해서는 교단 지지 기반을 둘러싼 내부 경쟁 가능성을 전망했다. 윤 전 본부장은 야권 내부 사정을 언급하며 "야권 보니까 선대위에서 서로 통일교 자기가 잡았다고 하려고 할 것. 나는 그게 싫다"고 말했다. 특정 중진 의원들이 통일교 지지를 누구 공으로 할지 다툴 수 있다는 예상과 함께, 자신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셈이다.
그는 통화에서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두고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본부장은 두 사람을 '곁다리'라고 지칭하며 "대선 후보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에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전 의원이 여야와 통일교 사이 가교 역할로 언급됐지만, 핵심 채널은 아니라는 판단을 드러낸 대목이다.
특검팀 수사에서는 윤 전 본부장의 자필 진술서도 주요 근거로 다뤄지고 있다. 윤 전 본부장은 지난 8월 특검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임 전 의원, 김 전 의원 등에게 통일교 측 자금이 전달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인사에게 각각 수천만 원과 명품 시계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특검팀은 관련 내용을 내사 사건으로 분류해 수사보고서를 작성했으며, 전재수 장관에 대해서는 뇌물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해저터널 사업 등 통일교의 숙원 사업을 추진해달라는 청탁과 연계해 금품이 오갔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임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에 대해서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사자들은 모두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전재수 장관과 임 전 의원, 김 전 의원 측은 통일교 자금이나 고가 선물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히며, 특검 수사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해왔다. 여야 모두에서 부인 입장이 나오는 만큼, 향후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정치적 파장이 달라질 전망이다.
윤 전 본부장과 통화한 통일교 간부는 윤 전 본부장의 정치권 행보를 두고 "청와대나 인수위원회, 그 이상까지도 라인을 만들어본다는 꿈을 가졌으니 보따리 들고 쫓아다닌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선 국면을 활용해 차기 권력 핵심과의 직통 라인을 구축하려 한 욕심이 과도한 로비성 접촉으로 이어졌다는 취지다.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이 한학자 총재 뜻에 따라 유착 상대를 국민의힘으로 좁힌 뒤, 대선 전후 시점을 나눠 쪼개기 후원에 나서는 등 보다 조직적인 정치 개입에 착수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수사팀은 또 건진법사로 알려진 무속인 전성배씨를 매개로 김건희 여사 측에 금품이 전달됐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통일교 자금이 비선 채널을 통해 권력 핵심으로 흘러들어갔는지 여부가 수사의 또 다른 관건이다.
통일교 측은 교단 조직 차원의 공모를 단호히 부인하고 있다. 한학자 총재 측은 지난 1일 공판에서 "윤 전 본부장은 세속적 야심이 가득한 사람"이라며 "검찰이 윤 전 본부장의 정치적 야심에서 비롯된 행위를 무리하게 한 총재와 공범 관계로 구성했다"고 주장했다. 교단 공식 입장은 윤 전 본부장의 일탈 행위일 뿐, 통일교 전체의 정치 개입은 아니라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선을 앞두고 종교단체와 정치권 사이 자금·인맥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향후 정치권 전반에 대한 수사 확대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검 수사 결과에 따라 여야 주요 인사들에 대한 사법 처리 여부뿐 아니라 종교단체의 정치 활동 규제 논의도 본격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은 통일교와의 관계를 둘러싼 특검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다음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국에도 적잖은 변수를 던질 것이란 전망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