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의 봄빛, 걸음마다 물들다”…최경진, 영상앨범 산에서 담아낸 섬 위로→마음에 스민 여정
투명한 아침 공기 속, 오름 사진작가 최경진의 제주는 한 폭의 수채화처럼 스몄다. 부드러운 봄의 빛을 따라 걷는 그의 발끝에는 성산일출봉에서부터 사려니숲, 또 오름에서 오름으로 이어지는 섬의 시간과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한 걸음마다 흔들리는 풀잎 소리와 바람에 실려오는 바다 내음, 그리고 생의 초입에 올라선 듯한 그 설렘이 진하게 번졌다.
성산일출봉에 다다른 순간, 썰물에 드러난 검은 바위는 초원의 이끼빛과 어우러져 한낮의 풍경을 그렸다. 오름 안을 오르는 길목, 용암이 바다와 만난 수성화산의 흔적과 오목한 분화구, 그리고 그 위를 유영하는 봄볕이 빚은 파노라마 풍광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정상에 올라 바라본 분화구 너머로 우도와 제주시내가 펼쳐지고, 작은 오름들은 거대한 섬의 숨결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최경진은 끊임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 계절의 숨결과 변화하는 빛을 기록했다.

숲으로 이어지는 여정은 사려니숲에서 한층 깊어졌다. 빽빽한 삼나무 숲 그늘을 통과할 때마다 손끝에 닿는 공기는 촉촉하게 맑았다.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과 숲 내음, 작고 수줍은 벌레 소리와 새 지저귐이 어우러져 고요한 치유의 순간이 깃들었다. 최경진은 원시림 한가운데에서 자연이 주는 위로와 안도를 천천히 음미하며, 사람이 정갈하게 내려놓는 호흡처럼 숲을 거닐었다.
긴 여행 끝, 큰노꼬메오름에 도착한 숨결에는 무거운 묵직함 대신 성취와 감동이 남았다. 잣성 옆을 따라가는 가파른 계단길, 정상에서 펼쳐진 말발굽 분화구의 광활함, 그 위로 흐르는 구름과 빛의 결이 모든 피로를 녹였다. 멀리 이어진 바리메오름과 금오름, 수만 년을 버텨낸 오름들의 잔잔한 풍경은 살아 숨 쉬는 섬의 위대함을 말없이 전했다.
계절이 머무는 오름 위에서 최경진이 걷고 바라보고 찍어낸 순간들은 울림 가득한 봄의 여운으로 남았다. 자신의 길을 따라가며 만난 제주의 자연은 무엇보다 깊은 위로와 치유로 다가왔다. KBS2 '영상앨범 산'을 통해 오름 사진작가 최경진이 담아낸 제주의 봄이 5월 25일 일요일 아침 7시 10분, 봄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기억 속에 가만히 스며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