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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 증언 거부하겠다"…노상원, 윤석열 내란 재판서 진술 거부 공방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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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혐의 여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과 특검 수사가 맞붙었다. 12·3 비상계엄 사전 모의 사건의 핵심 연루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섰지만, 정작 계엄 모의와 부정선거 의혹 관련 질문에는 잇달아 침묵으로 일관하며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노 전 사령관은 대다수 쟁점 질문에 대해 증언을 거부했다. 다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거나 방어하는 데 필요한 대목에서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노 전 사령관은 재판 내내 특검팀 질문에 말을 아끼다가도 일부 항목에서는 장황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부정선거 의혹 관련 활동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아이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못 했다"며 "나머지는 귀찮으니까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말해 방청석이 술렁이기도 했다. 특검팀은 발언의 취지를 재차 확인했지만, 노 전 사령관은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노 전 사령관은 12·3 비상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을 수사할 제2수사단 구성을 위해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요원의 인적 정보를 넘겨받은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노 전 사령관이 정보사 요원 관련 자료를 수집·전달하는 과정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연루됐는지 여부를 집중 추적 중이다. 또 노 전 사령관의 수첩 내용 분석을 통해 2023년 10월 군 장성 인사 무렵부터 계엄 준비가 본격화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보고 있다.

 

이날 공판에서 특검팀은 "지난해 11월 17일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김 전 장관을 만난 사실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 전 사령관은 "그날 공관 회의에 간 건 아이 사망과 관련해 김 전 장관이 조화를 보내고 위로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하러 갔다"고 진술했다. 그는 회동 목적이 개인적 조문 인사 차원에 그쳤다는 점을 강조하며, 계엄 관련 논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취지의 추궁을 부인하는 데 힘을 실었다.

 

부정선거 의혹을 주제로 한 강연·교육 활동 여부에 대해서도 신문이 이어졌다. 특검팀이 "지난해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교육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노 전 사령관은 "아이가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못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나머지는 귀찮으니까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덧붙여 추가 질문을 차단했다. 특검은 노 전 사령관이 부정선거 의혹과 계엄 준비 구상을 연결해 확산하려 했는지 여부를 규명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핵심 당사자의 입 막힘으로 사실관계 확인에 난항을 겪는 모양새다.

 

비화폰 사용 여부를 둘러싸고도 공방이 이어졌다. 특검팀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밤 다른 소령을 통해 김 전 장관에게 전화하지 않았느냐"며 우회적인 지시 전달이나 보고 정황을 캐물었다. 노 전 사령관은 "12월 2일인가에 김 전 장관으로부터 비화폰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김 전 장관이 아무 말씀 없이 주셔서 국방부 비화폰인 줄 알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비화폰을 받았음에도 다른 소령을 통해 일반전화로 연락했다는 점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자,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전화를 걸려고 해보니 조직도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발신 버튼도 없었다"며 "그래서 일반전화로 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기기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주장하며, 비화 통신망을 통한 계엄 관련 지시나 교신 의혹을 부인하는 논리를 폈다.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해제 소식을 접한 경위에 대해서도 답했다. 그는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과 관련한 특검팀 질문에 "TV를 통해 알게 됐다"고 짧게 말했다. 계엄 해제 과정에 군 내부의 추가 움직임이나 별도 보고 체계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더 이상 응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 핵심인 계엄 사전 모의 구체 정황, 제2수사단을 위한 정보사 요원 인적 정보 수집·전달 경위 등에 대해서는 줄곧 증언을 거부했다. 특검팀이 노 전 사령관 수첩 내용과 군 인사 일정, 회의 일지 등을 근거로 계엄 준비 단계의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며 신문했지만, 노 전 사령관은 "증언을 거부하겠다"는 답만 반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과거 다른 형사 재판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증언을 거부해 특검과의 갈등을 빚어왔다. 다만 이날은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에 나서면서, 향후 법정에서 그의 발언이 공소 유지와 방어 논리에 어떻게 활용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검은 증언 거부 범위와 진술 내용의 모순 여부를 검토해 추가 소환이나 위증·증언거부 관련 법적 조치를 따져보겠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노 전 사령관에 대한 신문을 마무리한 뒤, 이날 오후에는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불러 증인신문을 이어갈 계획이다. 국회 계엄 해제 의결 전후 군 수뇌부의 판단 과정과 지시 체계,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보고·협의 라인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혐의 재판은 앞으로도 군·정보 라인 핵심 인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어지면서 긴 장기전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법원과 특검, 변호인단은 향후 관련 재판 일정을 조율하며 내년에도 추가 심리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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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윤석열#김용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