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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슭수라상부터 별빛산책로까지”…밤의 경복궁을 산책하는 새로운 취향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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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경복궁을 걷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달빛과 등불이 만든 그림자 속에서, 고궁을 오롯이 느끼려는 산책은 이제 일상의 호사로 자리 잡았다. 예전엔 단순한 역사 명소에 머물렀던 경복궁이, 지금은 오감으로 체험하는 야간 여행지로 변신했다.

 

SNS에는 별 초롱을 들고 궁궐의 야경을 누비는 이색 인증이 쏟아진다. ‘경복궁 별빛야행’은 올해도 서울 종로에서 단순한 관람이 아닌 ‘머무름’과 ‘느낌’의 축제로 돌아왔다. 시작은 ‘도슭수라상’에 앉아 왕과 왕비의 일상 음식을 현대식 유기 도시락에 받아 드는 일. 국악 공연이 어우러진 외소주방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한데 섞인 특별한 시간이 흐른다.

도슭수라상부터 별빛산책로까지…‘경복궁 별빛야행’ 서울 종로에서 열린다
도슭수라상부터 별빛산책로까지…‘경복궁 별빛야행’ 서울 종로에서 열린다

이런 변화는 통계로도 읽힌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경복궁 야간행사 참가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 중이다.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야행 프로그램을 찾는다. 음식, 음악, 해설이 어우러진 코스는 고전 역사에 대한 공감대를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전문가들은 이 작은 모험을 ‘도심 속 리셋’이라 표현한다. 문화예술경영학 박사 김지현은 “도심에서 일상적으로 접할 수 없는 공간의 경험, 그리고 시간의 층위를 느끼게 해주는 과정에서 현대인들은 새로운 위로와 여유를 찾는다”고 말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오랜만에 조용한 밤 산책을 했다”, “궁중음식에 푹 빠졌다”부터 “별빛 아래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 위로가 됐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하다. 행사에 참여한 한 시민은 “고궁에 앉아 있던 그 짧은 시간만큼은 모든 근심이 잠들었다”고 표현했다. 바쁜 하루 끝, 낯선 경험에 기대 작은 나만의 여백을 찾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 풍경이다.

 

경복궁 별빛야행은 단순한 야간행사를 넘어, 전통과 현대, 역사의 시간과 나의 시간을 오롯이 포갤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된다. 도싱 한복판에서 시간의 깊이에 귀 기울이는 이 산책은, 잊고 지냈던 감각을 깨워주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새로운 일상 의식이 되고 있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한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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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별빛야행#도슭수라상#서울종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