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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어머니의 잔상”…영화 얼굴, 진실이 불러온 공포→침묵 끝에 남겨진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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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어머니의 잔상”…영화 얼굴, 진실이 불러온 공포→침묵 끝에 남겨진 물음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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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미소가 사라진 그 순간, 박정민이 그려낸 임동환의 표정엔 진실을 찾아가는 두려움과 용기가 교차했다. 영화 얼굴은 박정민과 신현빈, 권해효가 품은 삶의 쓸쓸한 무게를 스크린 위에 올려두며, 연상호 감독 특유의 절제된 연출 속에서 이들의 숨죽인 아픔을 길고 짙게 남겼다. 숨겨진 어머니 정영희의 백골 사체로부터 시작된 이 이야기는, 각기 다른 상처와 혐오를 안은 인물들이 진실을 향해 내딛는 침착하면서도 격렬한 흔적을 좇는다.

 

사라진 얼굴, 부재하는 어머니를 찾는 임동환의 고독한 여정이 다큐멘터리 감독 김수진의 시선과 뒤엉키며 40년 전 기억의 미로를 만든다. 장례식장에 모인 가족과 지인들은 정영희에 대해 한결같이 못생겼다고만 말할 뿐, 실체를 증언하지 못한다. 더욱 큰 혼란은, 남편 임영규가 시각장애인으로 아내의 얼굴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는 설정에서 비롯된다. 결국 관객은, 얼굴이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연상호 감독의 동명 그래픽노블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더욱 첨예해진 사회적 편견과 도덕적 모순을 정영희와 임영규, 그리고 동환의 눈동자를 통해 날카롭게 포착한다. 외모 콤플렉스,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진 지워진 기록, 그리고 촉각으로 남겨질 수밖에 없던 삶이 스크린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단순히 추한 외양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존재의 기억과 증언, 그리고 사회가 외면한 흔적을 깊게 각인시킨다.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 선과 악을 명확히 가르지 않는다. 오히려 “나쁜 사람이 착한 척을 하면 착한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라는 정영희의 질문을 반복함으로써 인간 내면의 이중성과 복잡성을 집요하게 추궁한다. 각자 자신만의 진짜 얼굴을 감출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처절한 외침은, 곱씹을수록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특히 197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과 함께 정영희와 임영규가 겪은 사회적 소외와 차별, 가족 간의 이해와 오해, 취재라는 미명 하에 포장되는 정의의 현실 등 다층적 의미가 관객의 마음을 깊게 헤집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정영희의 실제 얼굴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극장을 나서는 순간, 관객 각자에게 ‘진짜 얼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예산 2억 원, 최소의 인원과 짧은 촬영 기간 속에서 완성된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쉽게 기억에서 지워질 수 있는지, 그러나 그 빈자리는 얼마나 영원하게 남아 흔적을 남기는지를 잔잔하게 역설한다. 화려한 영상미 대신 묵직한 서사와 사유로 깊은 사색을 유도하는 ‘얼굴’은 화려함이 아닌 진짜의 의미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오랫동안 남을 작품으로 남을 전망이다.

 

영화 얼굴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103분간 몰입감 넘치는 전개를 선사하며 이달 11일부터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배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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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연상호감독#박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