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연패 사슬 끊다”…박정환, 신진서 넘고→4년 만에 메이저 우승 도전
박정환의 얼굴엔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안도와 굳은 결의가 함께 스며 있었다. 곤지암리조트에 모인 바둑팬들 앞에서, 17번의 좌절 뒤 거둔 한 판의 승리가 조용히 터졌다. 승부를 가른 결정적 순간, 침묵과 환호가 교차했고 박정환은 감정을 삼킨 채 판을 응시했다.
제30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 16강전이 21일 경기도 광주 곤지암리조트에서 펼쳐졌다. 박정환 9단과 신진서 9단, 한국 바둑계를 대표하는 두 기사가 운명의 대국으로 맞섰다. 박정환은 초반 우하귀에서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잡으며 흔들리지 않는 행마로 경기를 풀어나갔다. 상대의 거듭된 추격과 흔들림에도 흔들리지 않고, 백 불계승으로 승리를 확정지었다.

이날 승리는 약 2년 10개월 만에 신진서를 제압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박정환은 그간 신진서에게만 17연패를 기록했으나, 끈질긴 집중력과 강인한 집념으로 마침내 연패 사슬을 끊어내며 랭킹 1위의 자존심을 되살렸다. 경기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넘기지 않은 안정감이 빛난 순간이었다.
박정환의 통산 우승 기록은 36회에 이른다. 최근 몇 해 동안 신진서가 전무후무한 기세로 한국 바둑을 이끌면서 어쩔 수 없이 약자의 입장에 서야 했지만, 이날 경기는 세밀한 수읽기와 집요한 인내의 싸움으로 다시 한 번 강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개별 승부마다 자주 고비를 맞았던 시간, 박정환은 마침내 벽을 넘었다.
경기 뒤 박정환은 “오랜만에 신진서를 꺾어 매우 기쁘다. 연패가 끝나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동안 쌓인 경험을 믿고 다음 경기 역시 최선을 다하겠다”며 깊은 각오를 드러냈다.
다음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변상일 9단이다. 박정환은 18승 9패로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취저와 커제의 기권으로 인해 중국 선수들이 대거 불참하면서, 박정환이 8강 고비만 넘는다면 4년 만의 세계 타이틀 재정상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또한 6월에는 춘란배 결승 3번기에서 중국의 양카이원과 격돌한다. 2021년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다시 한 번 세계를 무대로 정상에 오를 기회를 향한 박정환의 발걸음에 팬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젊은 피의 시대에 삼십 대 기사의 역주행이 돋보이는 지금, 박정환이 세대를 넘어 바둑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LG배 8강에서 박정환이 다시 한번 운명적인 대국을 펼칠 그날은 이른 8월로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