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가 골목을 누빈다”…보은 회인에서 재해석된 조선시대의 밤
가을밤, 도깨비와 함께 어둠 속 골목을 누비는 이들이 늘었다. 예전엔 책이나 전설에서만 만났던 조선의 밤 풍경이, 이제는 모두의 실제 체험이 되고 있다. 축제의 계절, 충북 보은군 회인면에서 ‘보은 회인 국가유산 야행’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밤이란, 시간의 벽 너머 전통과 놀이, 그리고 이야기가 이야기를 불러내는 새로운 만남이 된다.
올해 야행은 ‘피반령 도깨비와 함께하는 인산인해 회인 야행’이라는 슬로건 아래,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진행된다. 골목과 마당, 회인의 모든 거리는 8야 테마와 20여 개의 프로그램으로 환하게 빛난다. 특별히 6명의 도깨비 캐릭터가 이끄는 도깨비 난장은 전설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선사한다. 도깨비 분장실과 전통의상 체험도 인기다. 어른도 아이도 조선시대 사람처럼 머리를 묶고 저고리를 걸치며, 조심스럽게 타임머신 버튼을 누르듯 낯선 과거 속으로 뛰어든다.

사직제와 망궐례 같은 의식의 재현, 달빛을 쫓는 스탬프 투어, 강강술래와 조선 마당극 등은 관객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바꾼다. 야시장에서 길게 늘어선 조선주막과 푸드트럭의 소박한 음식 냄새, 밤하늘 아래 캠핑을 즐기는 가족들의 웃음, 그 곁에서 이어지는 별빛 캠프와 달빛서당 체험은 남녀노소 모두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런 변화는 소통과 체험 중심으로 진화한 축제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문화가 놀이로 재탄생하는 건 우리의 뿌리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 좋다”거나, “캠프와 공연, 전통의상 체험까지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밤”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SNS 속 인증샷, 마을마다 들리는 북소리, 전래동화 같은 마당극. “어렸을 땐 도깨비가 무섭기만 했는데, 이젠 이런 행사 덕분에 도깨비가 정겹게 느껴진다”는 한 엄마의 고백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밤이 깊을수록 골목은 더욱 활기로 넘친다. 피반령 도깨비를 둘러싼 풍습과 옛길의 정취, 문화재 해설과 야간 탐방에서 우리는 지역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한다.
전설로만 남을 것 같던 천년의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누군가의 가족앨범 한 켠을 채운다. ‘보은 회인 국가유산 야행’은 전통이 일상의 리듬으로 녹아드는 축제다. 작고 소박한 체험이지만, 우리의 기억과 삶은 그 안에서 오늘도 천천히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