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7조5천억 달러, 미국에 머물 것인가”…트럼프 관세전쟁 여파로 글로벌 자금 이동 본격화→신흥국 기회 주목
차가운 달러 자본의 흐름이 아시아 대륙을 적실 때, 그 물결의 최종 도착지는 언제나 미국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익숙한 풍경이 변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미국 재무부의 최근 자료를 인용해 알린 대로, 아시아권 주요 11개국이 보유한 미국 주식과 채권의 순투자액은 7조5천억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1경 원에 다다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만개한 아시아의 무역흑자와 성장 날개는, 미국 자산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라는 또 다른 바다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 바다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라는 블랙스완을 경험한 뒤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와 정치 양극화, 러시아 제재로 인한 달러의 정치적 리스크는, 아시아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항로를 탐색하는 실존적 숙제를 남겼다. 지난해, 아시아로부터 미국 자본시장으로의 유입액은 680억 달러에 머물렀다. 이는 대미 무역흑자의 11%에 불과한 수치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관세의 벽을 높이고, 미국 내 자산시장의 불확실성과 국가신용등급 하락, 재정 적자의 그림자가 짙어지자, 아시아의 굳건하던 투자 라인도 망설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1조7천920억 달러, 중국은 1조1천150억 달러로 미국 보유자산에서 상위권을 지켰으나, 중국은 올해 3월 기준 미국 국채 보유량에서 영국에도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이는 2000년 10월 이래 처음 있는 일로, 달러와의 인연이 아시아에서 서서히, 그러나 또렷하게 옅어지고 있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일본의 대형 보험사는 미국 국채 비중 축소와 함께 유럽, 호주, 캐나다 등 다변화 전략을 본격화하기에 이르렀다. 호주의 대표 연기금 유니슈퍼 역시 최고점을 찍었던 미국 투자 비중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아시아와의 상호관세를 유예하는 협상 과정에서 아시아 통화 가치의 절상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외환시장 역시 거센 파랑을 맞고 있다. 대만 생명보험사들이 대미 달러를 대규모로 매도한 여파로, 이달 초 2거래일 만에 대만달러 환율은 8% 이상 하락했다. 그 손실은 6억2천만 달러, 8천521억 원에 이른다.
한국 역시 한미 외환당국자 회의 직후 원/달러 환율이 2% 넘게 하락하는 등 국제 통화시장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아시아 대미 자금 유입이 둔화하는 이 시점에서, 가마 자산운용의 라지브 지멜루는 “시장은 변곡점에 있으며, 새로운 금융체제의 형성 속에서 변동성이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알리안츠 글로벌인베스터스의 버지니 메조너브는 “세계 경제 질서가 바뀌는 기로에 있다”며 “중국의 부상과 미중 경쟁 구도가 투자 헤게모니에도 결정적 변수를 더하고 있다”고 해설한다.
한편, 미국과 아시아의 무역·금융 관계는 환율정책, 투자 행로, 글로벌 리스크라는 쇄빙선을 타고 불확실성의 바다로 나아가고 있다. 유럽, 인도, 일본, 호주, 캐나다 등은 미국을 대신할 새 항로가 될 수 있을지, 아시아의 자본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서 물길을 재편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경제도 이 거대한 시계바늘의 변화에 신중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