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조건 없는 대화 가능”…미국, 북한에 대화 재개 의사 전달
북미 간 대화 재개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미국이 북한에 ‘전제조건 없는 대화’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시사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번에는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 가운데, 한미 양국의 외교 전략도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관계자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미국의 대북 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어떤 전제 조건 없이 대화하는 것에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만날 수 있다”고 언급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처음으로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백악관 측은 이번 입장에서 ‘북한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내부에서는 이번 메시지를 두고 실질적인 기조 변화보다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계산된 시그널에 무게가 실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이번 메시지는 만나고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현실적 접근”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미국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도 백악관은 “언제, 어디서든 북한을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은 일절 호응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제안은 바이든 정부와 결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무진 교수는 “바이든 정부는 문을 열어놓고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지 않았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더 적극성을 드러내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정부 역시 최근 대북 접근법에 변화를 주는 조짐을 보였다. 정부는 이제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의 '선후관계'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과거 북핵 협상 당시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후 북미 정상화가 뒤따랐던 절차와는 대비된다.
이에 따라, 미국과 한국은 비핵화 목표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도 북한이 제안한 대화 조건에 적극적으로 호응할지 주목된다. 반면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전략적 지위 인정에 집중하는 만큼, 실질적 ‘접점’ 도출이 쉽지 않다는 현실도 새삼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단에 따라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북한도 한미가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협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정상 간 깜짝 만남만으로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북한 외교의 DNA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는 것 자체가 김정은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향후 북한이 이번 미국의 제안에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가 북미 관계의 향방을 좌우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북미 정상 간 직접 대화 성사 여부와 함께, 양측의 실무회담 추진 가능성 등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지형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