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차기 대표 33명 경쟁…AI·보안 리더십이 승부 가른다
KT 차기 대표이사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정보통신 인프라와 AI 기반 플랫폼 전략을 동시에 이끌 ‘위기 수습형 리더’ 찾기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무단 소액결제 해킹 사고로 대규모 고객 신뢰 훼손을 겪은 KT는 대규모 보안 투자와 디지털 전환, AI 서비스 고도화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통신망과 클라우드, AI 플랫폼이 결합된 ICT 기업으로 구조 전환을 추진해온 KT가 어떤 리더십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내 통신·디지털 인프라 산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KT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4일부터 16일 오후 6시까지 진행한 공개 모집과 사내 후보, 전문기관 추천을 통해 총 33명의 대표이사 후보군을 구성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해 김영섭 대표 선임 당시 27명이 지원했던 것과 비교하면 6명이 늘어난 숫자다. 차기 대표를 향한 경쟁이 치열해진 동시에, 통신과 디지털 인프라를 넘나드는 복합 역량을 갖춘 인물이 늘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번 후보군에는 전체 주식의 0.5퍼센트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가 추천한 인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KT의 최대 주주인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분 8.07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단순 투자 목적을 이유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지배주주가 없는 구조에서 외부 주주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사회와 시장이 인선 과정의 투명성과 전문성에 더욱 주목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사외이사 8명 전원으로 구성됐으며, 인선 과정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인선자문단을 가동한다. 기업경영과 산업,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은 후보자의 서류를 검토하고 평가 의견을 이사회에 전달한다. 이추위는 이를 참조해 후보군을 압축할 예정이다. 다만 평가의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자문단의 세부 구성은 비공개로 운영된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사회가 어느 수준까지 후보 정보를 공개할지 여부다. KT는 2019년 구현모 대표 선임 당시 ‘밀실 선출’과 ‘낙하산 인사’ 논란을 의식해 최종 면접 대상자 명단을 공개했고, 2023년 김영섭 대표 선임 시에도 최종 면접 대상자 3명의 이름과 경력을 발표했다. 특정 세력의 입김 논란을 줄이기 위한 조치였던 셈이다. 최근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심사 객관성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이번에도 숏리스트를 공개해 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뒤따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 KT 사외이사 8명 중 7명이 현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됐다. 통신과 디지털 인프라 정책이 정부의 산업 전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만큼, 이사회 구성이 대표 선임의 공정성 논쟁으로 이어져 왔다. 업계에서는 “정부와 무관한 시장 친화적 인사가 선임될지, 정책 방향과 발맞춘 인사가 선택될지가 통신 산업 전반의 투자를 좌우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추위가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가운데, 김태호 전 서울도시철도공사 사장, 박윤영 전 KT 사장, 이현석 KT 부사장, 주형철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 등이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KT가 제시한 차기 대표의 핵심 역량은 기업경영 경험과 전문지식,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형성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글로벌 시각을 갖춘 리더십, 그리고 산업과 시장, 기술에 대한 종합적 전문성이다. 특히 통신과 미디어, 클라우드, AI를 아우르는 융합 구조로 재편되는 환경에서 기술 이해도가 낮은 리더에게는 전략 수립과 실행 모두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데이터센터 확대, 5G와 6G 진화, 클라우드 기반 기업 서비스 고도화 등은 향후 3년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 현안이기 때문이다.
무단 소액결제 해킹 사고 이후 신뢰 회복은 차기 대표의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사고 이후 피해 규모와 원인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KT의 입장이 여러 차례 바뀌며 고객 불신이 누적된 상황이다. 통신망과 결제 시스템이 금융과 생활 인프라 역할을 하는 만큼, 보안 취약 의혹은 통신사 전체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의 사실관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 구제와 재발 방지책을 구체적인 일정과 수치로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KT의 귀책 사유가 점차 구체화되면서, 위약금 면제에 따른 고객 이탈 가능성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과징금 부과 리스크도 함께 커지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피해 고객에게 충분한 보상과 서비스 안정성 확보 노력을 보여야 장기적인 고객 기반을 지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KT가 밝힌 5년간 1조원 규모 보안 투자 계획을 얼마나 실질적인 시스템 개선으로 연결하느냐도 차기 대표의 성과 지표가 될 전망이다. 네트워크와 서비스, 결제 시스템 전반에 걸친 보안 체계를 전면 재정비하고, 내부 보안 문화까지 바꾸는 실행력이 요구된다.
조직 안정화와 인공지능 전략 조정 역시 차기 리더에게 주어진 숙제다. KT는 새 대표 체제에 맞춰 내년도 경영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해킹 사고 이후 내부 사기가 떨어진 가운데 조직 개편과 인력 재배치를 추진해야 해 리더십 부담이 커졌다. 현장 조직의 위기 피로도를 낮추면서도, 디지털·AI 분야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인사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KT의 AI 전략 측면에서는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과의 협업 구조가 핵심 변수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고 AI 서비스와 클라우드, 생산성 도구를 결합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차기 대표는 이 협업 기조를 유지할지, 자사 인프라와 자체 AI 모델에 더 무게를 둘지 선택해야 한다. 국내 통신사들은 이미 가입자 데이터와 네트워크 인프라를 기반으로 AI 콜센터, AI 홈 서비스, 기업용 AI 솔루션 등 다양한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와 동맹을 확대할지, 통신사의 독자 플랫폼을 키울지에 따라 서비스 구조와 수익 모델이 달라질 수 있다.
지배구조 개선도 여전한 과제로 남아 있다. KT는 특정 지배주주 없이 소유가 분산된 구조 속에서 정권 교체기마다 수사와 대표 교체가 반복되며 리더십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장기 전략이 정권과 무관하게 이어지려면,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 개선과 경영진 선임 기준의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AI와 통신 인프라가 국가 핵심 인프라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정치적 독립성과 공공성, 기업가치 제고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지배구조 설계가 요구된다.
통신과 디지털 인프라 산업에서는 글로벌 통신사들이 이미 AI와 클라우드, 콘텐츠를 묶은 ‘디지털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 통신사들은 빅테크와의 클라우드 제휴를 확대하면서도, 자사 네트워크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로 신규 수익을 만들고 있다. KT가 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단기 위기 관리에 그치지 않고 5년 이상을 내다본 투자와 기술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제시한 역량 기준을 바탕으로 연내 최종 1인을 선정해 이사회에 보고할 계획이다. 최종 후보자는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다. 통신과 AI, 보안, 지배구조 개선까지 무거운 과제를 떠안게 될 차기 대표의 선택을 두고, 산업계는 이번 인선이 KT의 단기 위기 수습을 넘어 국내 디지털 인프라 경쟁력의 방향을 가를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