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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따라 걷는 길”…구례의 자연 속에서 마주한 조용한 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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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따라 걷는 길”…구례의 자연 속에서 마주한 조용한 쉼

박다해 기자
입력

요즘 구례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저 잠깐 바람 쐬는 여행이 아니라, 긴 숨을 고르는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언제부턴가 구례의 고즈넉한 사찰, 맑은 강, 드문드문 놓인 한옥들이 소셜미디어에 조용히 공유되고 있다. “바쁘게 지나온 일상 끝에서, 너무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은 충분한 여백을 만났다”는 체험담이 반복된다.

 

구례는 전라남도 동부, 지리산과 섬진강이 만나 만든 공간이다. 화엄사와 천은사 같은 유서 깊은 사찰부터, 산동면 노고단과 산수유마을, 섬진강 대나무숲길, 토지면 쌍산재의 고택에 이르기까지 곳곳마다 느린 호흡이 서린다. 특히 노고단에 흐드러지게 피는 야생화와, 3월이면 노란 물결을 이루는 산수유꽃축제를 기다리는 이들이 매년 많아진다. 최근 관광 트렌드가 ‘빨리 보고 많이 찍는’ 여행에서, ‘조용히 머무르며 시간을 만끽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도 구례의 인기를 거드는 요소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4 국내 여행 트렌드’에 따르면,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자연과 전통이 공존하는 국내 소도시로의 소규모 여행 빈도가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만큼 구례의 한옥 체험, 대나무숲 산책 코스, 사찰에서의 명상 프로그램 등 일상을 비우고 자신을 돌아보는 힐링 프로그램 수요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따라온다.

 

정신과 전문의 이지현은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자연스러운 휴식과 내면 회복에 관심이 높아졌다. 사용감 없는 공기를 마시고 천천히 걸으며, 자연에 녹아드는 경험이 정서적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표현했다. 실제로, “구례에서는 진짜로 시간이 느리게 간다”거나 “간단한 산책도 절로 명상이 된다”는 방문자 평이 어렵잖게 이어진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차분히 걷다 보면 언제 속상한 일이 있었나 싶다”, “조용히 누워 한옥 천장을 바라보다가 스스로 위로받는 기분”이라거나 “대나무숲에선 아무런 계획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감상이 공유된다. 혼자 다녀온 여행기를 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전 같으면 한적함을 지루함과 동의어로 여겼겠지만, 요즘 구례의 한산함은 힐링의 다른 말이 됐다.

 

자연의 소박함, 시간이 멈춘 듯한 한옥마을, 템플스테이 같은 사찰 생활이 구례 안에서 오롯이 삶의 속도를 늦추는 법을 일깨운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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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지리산#섬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