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약세 심화, 유로와 위안화 물결”…ECB·중국, 국제 금융 패권 재편 신호→글로벌 시장 불안 증폭
세계의 재정시계가 다시 움직인다. 뉴욕과 프랑크푸르트, 베이징의 시장 어귀에서 소용돌이치는 통화의 기운 속, 달러의 패권 구도는 뿌리 깊은 불안과 함께 점진적으로 금이 가고 있다. 미국의 장벽과 불확실한 재정, 보호주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유로화와 위안화가 조용한 격류로 성장세를 연출하며 전통 질서에 도전장을 내민다.
올해 들어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인덱스는 9%나 내려앉으며, 27일 오전 국제시장에서 98.809에 머물렀다. 연초 1.03달러였던 달러/유로 환율도 1.1398달러까지 뛰었다. 유럽중앙은행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연설에서 “지금은 글로벌 유로의 순간”이라고 평하며 무역질서와 금융의 지도 상에 유로화의 확장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독일 분데스방크의 요아힘 나겔 총재 또한 유로의 입지를 스스로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는 세계 자본의 흐름에 묵직한 변곡점을 시사한다. 2017년 1분기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달러의 비중은 64.7%에 달했으나, 지난해 3분기엔 57.4%로 뚝 떨어졌다. 같은 기간 유로화는 19.3%에서 20.0%로 소폭 상승했다. 엔화와 위안화도 각각 5.8%, 2.2%로, 국제 결제 구조에서 더 두터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전진한다.
미국 국채 역시 온기가 식고 있다. 30년 만기 금리는 심리적 저지선인 5%를 넘어섰고,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신뢰는 옅어진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는 지속적으로 감소해, 미국의 주요 채권 보유국 순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2000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영국에 뒤처진 자리다.
중국의 발걸음은 더욱 분주하다. 인민은행은 은행 거시건전성평가(MPA) 조정을 단행, 위안화 표시 무역 거래 하한선을 25%에서 40%로 높였다. 위안화 표시 상품 무역 결제 비중은 이미 30%에 접어들었다. 중국은행들은 무역업체 대상 결제 수수료를 줄이고, 상하이 금융서비스를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등 위안화 위상을 의욕적으로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는 위안화의 글로벌 결제 비중이 4.1%에 이르렀다고 짚었다. 중국 위안화국제지불시스템(CBIP)을 통해선 지난해 175조 위안, 전년 대비 무려 40% 넘는 성장세가 포착됐다.
이 현상에 브릭스(BRICS)와 같은 신흥경제국 연합체도 더욱 강하게 탈달러화에 박차를 가한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이에 대한 대응으로 100% 관세 경고를 내렸지만 탈달러 바람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등불 아래, 각국의 정치와 경제가 거대한 파문으로 조응한다. 전통 달러 중심 국제금융체계가 흔들리는 지금, 유로화와 위안화의 야심 어린 부상은 장기적으로 신흥경제권과 선진 금융시장 모두에 깊은 여운을 남길 전망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달러 약세와 동행하는 국제 금융구도의 지각변동이 예고된 시대, 환율·금리·금융자산의 물결 위에서 부드럽지만 확고한 변화의 조짐을 읽는다. 유로화와 위안화가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가, 세계 경제와 한국 시장에 어떤 시련과 기회를 선사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