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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산책, 밀물 바다 걷기”…서산의 하루가 선물하는 느릿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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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찰 산책, 밀물 바다 걷기”…서산의 하루가 선물하는 느릿한 시간

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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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하늘 아래, 한결 시원해진 바람이 서산의 거리를 감싼다. 오전 기온이 25도를 넘고 습도마저 높아졌지만, 사람들은 그저 우산 하나 들고 사찰 길이나 해변 산책로로 발을 옮긴다.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밖으로 나서서 마주하는 풍경은 어쩐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실내보다 실외에서, 자연과 역사의 결을 따라 하루를 걷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산 개심사는 천년의 시간을 담은 고찰이다. 고즈넉한 경내를 돌며 깊은 초록 숲과 고풍스러운 한옥 처마를 바라보면, 무심코 번잡한 생활에서 한 걸음 벗어난 마음이 느껴진다. “경건함과 평온함에 저절로 숨이 고요해졌다”는 방문객의 표현처럼, 그곳의 공기는 다른 세상과 이어져 있어 보인다. 같이 둘러볼 만한 서산보원사지는 통일신라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 절터로, 석탑과 유구한 불교 유물이 역사 여행의 발길을 붙든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개심사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개심사

숲길을 걷다가 톡 쏘는 바람이 그립다면, 중앙호수공원이 또 다른 쉼터가 된다. 넓은 산책로와 자전거길을 따라 다양한 세대가 저마다의 속도로 걸음을 옮긴다. “혼자 걷기에도, 가족과 나서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소문처럼, 도시의 일상이 자연 속에서 잠시 멈춘다.

 

서해의 이색 풍경을 만끽하고 싶다면 간월암을 추천한다. 바닷물이 물러나면 걸어서 들어가는 작은 암자는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을 안긴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달라지는 섬의 실루엣엔 모험심이 더해진다. 전통 가옥의 품격을 간직한 서산유기방가옥에서는 조선시대 양반가의 정취와 한옥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보인다. 최근 서산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사찰과 문화유적을 찾는 주말 나들이객이 꾸준히 증가 추세다. SNS에선 “어느새 곁에 자연과 옛 건축이 있던 걸 이제야 알아간다”는 글이 퍼진다. 전문가들은 요즘 여행을 단순한 이동이 아닌, 감정과 풍경의 전환점으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한다. “날씨에 따라 가는 곳도,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 땀이 나더라도 숲에서 쉬다가, 해질 무렵엔 바닷가로 여유를 찾으려는 심리가 크다”고 지역 트렌드 칼럼니스트는 분석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오늘 비 온다는 예보에 일부러 개심사 들렀다”며 “비 오는 날 절 구경이 제일 운치 있다”는 후기도 있다. “물 빠진 길 따라 간월암까지 걸어가는게 소소한 모험 같다”는 공감도 눈길을 끈다. 그렇게 서산에서의 하루는, 굳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내면의 속도를 천천히 만들어준다.

 

자연, 역사, 그리고 아주 일상적인 시간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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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개심사#간월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