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역전 후 비마저 잠잠”…한화, 대전 역대 최장 우천 중단→LG전 집념의 승리
잔뜩 드리운 구름 아래서 쏟아진 빗줄기는 경기장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1만7천여 관중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한 채, 홈팀 한화 이글스의 승부를 기다렸다. 마침내 살아난 역전의 순간, 긴 인내와 설렘이 하나로 녹아들며 대전의 밤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2024년 6월 15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KBO리그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는 예측할 수 없는 폭우로 5회말 한화의 5-4 역전 직후 1시간44분이나 중단됐다. 우중 속에서도 팬들은 자리를 지켰고, 오후 6시43분부터 시작된 중단은 밤 8시27분에야 끝을 보았다. 인내의 시간을 버틴 한화는 재개 이후 공격력을 폭발시키며 10-5 대승을 거뒀다.

이날 기록된 1시간44분의 우천 중단은 프로야구 역사상 8번째로 긴 기록이다. 최장 기록은 2023년 9월 대전에서 열린 kt wiz와 한화의 경기로, 당시 3시간24분의 지연 끝에 kt가 승리했다. 최근 10년 사이 대전은 우천 중단 톱 순위에 자주 이름을 올렸으며, 이 과정에서 한화와 전신 빙그레의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흡사 대전의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고 드라마틱한 승부의 장이 이어져왔다.
기록이 계속 쌓이는 또 다른 이유는 대전 구장의 독특한 기후와 한화 구단의 집념이다. 15일 경기처럼 장맛비가 경기 중에 쏟아지는 경우, 선수들은 물론 관중들도 한마음으로 묵묵히 그라운드를 기다렸다. 팬들의 응원은 중단 내내 이어졌고, 경기 재개 뒤 터진 한화 타선의 폭발은 마치, 기다려온 축제의 봉인이 풀린 듯했다.
우천 외 사유로 경기가 길어진 이색 사례로는 2003년 9월,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전이 꼽힌다. 당시 단일 시즌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던 이승엽 선수의 고의사구 상황에서 관중 소란이 빚어지며 1시간34분간 지연됐고, 경기는 삼성이 7-2로 승리했다.
경기가 마무리된 뒤 한화 한용덕 감독은 팬들의 기다림에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화는 역전승으로 순위 경쟁에 불씨를 지폈으며, 팀 분위기도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보다 모든 순간을 함께한 현장 팬들에게 이긴 경기의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게 남았다.
여름 우천 시즌이 다가오며, KBO리그 각 구단은 앞으로 일정 관리와 자연의 변수를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 한화의 다음 경기 역시 홈구장 대전에서 16일 진행될 예정이다. 긴 여운을 남긴 이날처럼 또 한 번, 구름이 걷힐 순간을 관중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