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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500억달러 투자현금 논의 평행선”…김용범·김정관, APEC 앞두고 미국과 협상 속도전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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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을 잇따라 방문하며 대미 투자 패키지 협상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직접 현금 투자의 비중을 두고 양국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투자 협의를 문서화할 수 있을지, 정치권과 경제계의 촉각이 곤두서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과 김정관 장관은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 워싱턴 DC로 출국했다. 이번 방미 일정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등 미 정부 인사와의 관세 후속 협의에 맞춰 추진됐다. 김 실장은 출발 전 "많은 쟁점에 대해 양국 간 이견은 많이 좁혀진 상태지만, 한두 가지 분야에서는 여전히 양국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며 긴장된 협상 분위기를 전했다.

이들의 방미는 불과 사흘 전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워싱턴 DC에서 대미 투자 안건을 논의하고 귀국한 직후 이어져 더욱 이례적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양국이 관세 협상에 진전을 이루고 있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된 핵심 쟁점은 3천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 패키지의 실행구조다. 지난해 한국 GDP의 20%에 달하며, 2026년도 예산의 70% 수준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투자 방식과 현금 비중을 둘러싼 한미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난항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한국은 투자금의 5%만 직접 현금 지분 투자로 집행하고, 나머지는 보증 혹은 대출 등으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미국 측은 일본 사례를 참고해 전액 현금 투자 방식, 즉 '투자 백지수표식' 요구를 고수해왔다. 이에 대해 김정관 장관은 최근 "미국이 전액 현금 투자 입장은 아니다"라며 일부 진전된 협상 분위기를 시사했다. 그는 "상당 부분 미국이 우리 입장을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투자 방식 외에도 대규모 자본 유출이 한국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또 다른 난제다. 한국 정부는 3천500억달러의 대규모 투자가 모두 현금 위주로 진행될 경우 외환시장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통화 스와프 등 안전장치 마련을 거듭 요구해왔다. 김 장관은 “외환시장 관련 부분에서 한미가 상당한 공감대를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주요 쟁점에 합의 접근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통상 당국 관계자는 "스와프 체결 등 실제 조치가 검토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전했다.

 

APEC 정상회의가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면서 협상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한미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투자 합의의 문서화, 그리고 관세 문제의 최종 타결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한국의 직접 투자 부담, 현금 비중 등 주요 쟁점은 남아 있다.

 

정상회담에서 ‘대한국 관세 인하와 대미 투자’ 간의 큰 틀의 원칙만을 재확인하고, 이후 추가 협상에서 투자 MOU를 체결하는 단계적 방안이 대두되는 배경이다. 김용범 실장은 이에 대해 "APEC을 의식한 부분 합의는 정부 차원에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양국은 투자 집행 구조와 외환시장 안정장치 마련 등 잔여 쟁점을 두고 후속 협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이달 말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조기 타결 기대감과 장기 협상 국면이 교차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국내 산업계 역시 향후 한미관계의 분수령이 될 이번 협상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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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김정관#대미투자패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