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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번들로 묶는 프로야구와 마블…티빙 디즈니플러스 협공에 넷플릭스 긴장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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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에서 구독 모델 경쟁이 진화하고 있다. 티빙이 글로벌 플랫폼 디즈니플러스와 손잡고 번들 상품을 출시하고, 한국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을 장기 확보하면서 가구 단위 락인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스포츠 라이브와 글로벌 IP로 넓히며, 국내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를 턱밑까지 쫓겠다는 구도다. 업계에서는 이번 연합 전선을 토종 OTT와 글로벌 플랫폼이 이해관계를 맞춘 새로운 공존 모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티빙은 최근 일본 디즈니플러스 내에 티빙 컬렉션을 론칭한 데 이어, 국내에서도 디즈니플러스와 번들 상품을 선보였다. 일본 제휴가 티빙 오리지널과 한국 콘텐츠의 해외 유통 채널 확대에 방점이 찍혔다면, 국내 번들은 구독자 저변을 넓히는 가입자 확보 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토종 플랫폼 티빙이 글로벌 IP 경쟁력이 강한 디즈니플러스와 손을 잡고, 각자의 약점을 보완하는 구조다.

새로 나온 번들 상품은 스탠다드 이용권 기준으로 구성됐다. 티빙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3사 묶음은 월 2만1500원, 티빙과 디즈니플러스 더블 번들은 월 1만8000원에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개별로 가입했을 때보다 최대 약 37퍼센트 저렴한 가격대로, 가구 단위로 OTT를 여러 개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가격 메리트를 주면서 서비스 전환 비용을 높이는 락인 효과를 겨냥한 패키지다.

 

티빙은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그간 상대적으로 아쉬웠던 글로벌 콘텐츠 라인업을 보완하고, 디즈니플러스는 국내 시장 점유율 확대를 노릴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가 국내 진출 4년 차로 여전히 성장 구간에 있는 만큼, 토종 플랫폼의 가입 기반을 활용해 도달 범위를 넓히려는 계산이 담겼다. 이미 티빙 내에는 애플TV 브랜드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IP 풀과 인지도 측면에서 디즈니플러스와의 결합이 더 큰 구독 전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연령대 확장 전략도 뚜렷하다. 티빙의 주 이용층이 20대와 30대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는 가운데, 지상파 중심 콘텐츠가 강한 웨이브는 중장년 시청자층이 비교적 두텁다. 여기에 디즈니와 마블, 픽사 등 글로벌 IP를 선호하는 가족·키즈·팬덤까지 묶으면서, 한 가구 안 다양한 연령과 취향을 하나의 번들로 흡수하려는 구조가 완성된다. 업계에서는 프로야구 중계로 플랫폼에 유입된 스포츠 팬과 가족 구성원이 디즈니플러스 콘텐츠를 함께 소비하면서 교차 시청 시너지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포츠 라이브는 이 전략의 또 다른 축이다. 티빙은 당초 내년까지였던 한국프로야구 중계권 계약 기간을 연장하고, 2027년 이후 유무선 중계권에 대한 우선협상 지위까지 확보했다. 지난해부터 내년까지 3년간 KBO 중계권료는 총 1350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찍었다. 연장 계약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OTT 시장 내 스포츠 중계 가치 상승을 고려하면 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티빙이 대규모 스포츠 콘텐츠 투자를 감수하는 이유는 장기 가입자 락인과 손익분기점 달성 시점을 앞당기기 위한 전략적 투자 성격이 강하다. 프로야구 팬은 시즌 내내 경기 시청을 지속하는 특성이 있어, 드라마나 영화보다 이탈률이 낮고 구독 유지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광고 기반 요금제를 도입한 티빙 특성상 정기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라이브 스포츠가 광고 노출 수를 극대화하는 효자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티빙 측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도 수익성 개선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최주희 티빙 대표는 6일 CJ ENM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4분기에 다양한 모멘텀이 확보돼 손익분기점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프로야구 관중 수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1000만명을 넘기면서 현장 인기는 이미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 티빙 입장에서는 이 오프라인 팬덤을 온라인 시청과 번들 OTT 구독으로 연결하는 파이프라인을 확보한 셈이다.

 

국내 시장 내 경쟁 구도도 빠르게 재편되는 중이다. 티빙은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수 기준으로 쿠팡플레이에 2위 자리를 내주며 3위로 내려앉았다. 다만 사용자당 평균 이용시간은 여전히 티빙이 우위에 있다. 와이즈앱 리테일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1인당 월 평균 사용시간은 티빙이 4시간 45분, 쿠팡플레이가 2시간 32분으로, 티빙 이용자가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이 두 배 가까이 길다. 스포츠 중계를 비롯한 라이브 콘텐츠와 실시간 채팅, 숏폼 드라마 등 체류 시간 확대용 포맷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OTT 간 경쟁이 구독자 쟁탈전에서 수익성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이미 스포츠 중계권을 둘러싼 플랫폼 간 인수 경쟁이 치열하며, 복수 서비스 번들이 통신사와 유료방송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디즈니는 자사 서비스와 제3자 플랫폼을 묶는 번들을 통해 이탈률을 줄이고, 광고 기반 요금제를 확대해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번 한국·일본에서의 티빙과의 협업도 이러한 글로벌 흐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규제 측면에서는 아직 OTT 번들에 대한 직접 규제는 크지 않지만, 경쟁 제한과 이용자 선택권 축소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가 향후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한 번에 여러 서비스를 묶어 할인 제공하는 구조가 가격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개별 서비스 해지가 어렵거나 요금·약관 구조가 복잡해질 경우 소비자 보호 이슈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로서는 다수 사업자가 경쟁적으로 번들을 내놓는 초기에 있어, 시장 자율 경쟁 구도가 우선 작동하는 단계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티빙과 디즈니플러스의 이번 공조를 토종 OTT와 글로벌 OTT가 경쟁을 넘어 선택적 동맹을 맺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 콘텐츠 제작력을 가진 플랫폼과 세계적 IP를 보유한 글로벌 사업자가 각자의 강점을 교차 활용하는 방식이, 단독 구독 모델보다 수익성과 가입자 확대 측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프로야구 중계와 같은 장기 라이브 콘텐츠가 결합되면서, 가입자당 생애가치와 광고 매출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OTT 업계는 앞으로 번들 조합과 스포츠 라이브 확보 여부에 따라 구독자 구조와 수익성이 크게 갈릴 것으로 보고 있다. 넷플릭스를 정면으로 추격하는 티빙과, 한국 시장 확장을 노리는 디즈니플러스의 이해관계가 언제까지 맞아떨어질지도 관전 포인트다. 산업계는 이번 협력 모델이 실제 시장에 안착해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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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디즈니플러스#kbo프로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