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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약 DPP-4 억제제”…파킨슨병 진행 억제 원리 규명, 산업적 주목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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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 치료에 쓰이던 DPP-4 억제제가 파킨슨병의 진행을 늦추는 기전이 규명되며, 당뇨병약의 신경계 질환 치료제 재창출 전략이 산업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승호 용인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김연주 연세대 의생명과학부, 이필휴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 연구팀은 DPP-4 억제제가 장내 염증 조절을 통해 파킨슨병 발병 및 진행을 막는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거트(Gut)’를 통해 발표했다. 업계는 기존 당뇨병 치료제의 용도 확대가 파킨슨병 신약 개발 경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연구팀은 당뇨병 치료제 계열 중 하나인 DPP-4 억제제(시타글립틴)가 파킨슨병을 유도한 마우스 모델에서 운동장애뿐 아니라 도파민 신경세포 소실을 현저히 줄였다고 밝혔다. 기존 DPP-4 억제제가 혈당 강하 외 신경세포 보호 효과까지 갖는다는 점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특히 이 약이 알파-시누클레인(파킨슨병 원인 단백질) 응집을 감소시키고, 장내 유익균 증가 및 유해균 감소 현상도 명확히 관찰됐다. 이는 장-뇌 축(gut-brain axis)이라는 새로운 파킨슨병 병리 이론이 실제로 약리적으로 제어될 수 있음을 처음 입증한 사례다.

기술적 차별점은 DPP-4 억제제가 인슐린 분비를 유도하는 경로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신호에 의존하지 않고도, 장내 염증과 면역 체계 조절을 통해 파킨슨병의 진행을 차단했다는 점이다. GLP-1 수용체 작용을 억제해도 동일하게 예방 효과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실험에서 확인됐다. 이는 다수의 당뇨병약 중에서도 DPP-4 억제제가 뇌-장 연결을 타깃으로 하는 신약후보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번 연구는 당뇨병 환자에서 관찰됐던 파킨슨병 발병률 저하 현상에 대해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암, 신경계 질환 등 난치병에서 기존 허가 약물을 새로운 적응증에 적용하는 ‘드러그 리포지셔닝’ 전략이 활발히 쓰이고 있는 만큼, 글로벌 제약사와 연구기관의 협업 가능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당뇨병약을 신경계 질환 치료에 재적용하기 위한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나, 이번처럼 장-뇌 축 메커니즘을 집중적으로 규명한 연구는 드물다. 국내 연구진이 관련 원리를 국제적으로 입증한 성과로, 업계 선순환 경쟁 환경 조성에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DPP-4 억제제의 중장기 사용에 따른 부작용, 신경계 표적질환으로서의 안전성 검증, 식약처와 FDA의 적응증 확대 및 임상 요구 내용이 추후 관건이 된다. 데이터 보호, 약물 처방 기준 등 제도적 논의도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당뇨병 치료제로 잘 알려진 약물이 장-뇌 축을 혁신적으로 제어하는 연구가 신경과 질환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를 예고한 셈”이라며 “향후 파킨슨병 진행 억제뿐 아니라 예방 전략에도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산업계는 실제 임상 적용과 시장 안착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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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p-4억제제#파킨슨병#장내염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