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에 걷는 해변의 바람”…고성, 선선함 속 다층적 여행의 묘미
요즘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맑은 날만을 고집하기보다, 흐림과 선선함 속에서만 누릴 수 있는 고유의 경험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에는 흐림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비바람 치는 계절의 감각이 여행의 풍경을 바꾼다.
실제로 8일 오후, 고성엔 영상 28.7도의 기온과 53%의 습도가 어우러져 있다. 초속 3m의 동풍은 도시의 더위를 잠재우고, 해변을 찾는 사람들의 옷깃을 쓸며 지나간다. 자외선과 미세먼지는 모두 ‘보통’ 수준. 야외로 나서기에, 그러나 마냥 뜨거울 것 같았던 여름도 잠시 쉬어가는 오후다.

이럴 땐 해풍을 맞으며 조용히 걷기 좋은 ‘화진포해수욕장’이 제격이라는 평이 많다. “물에 들어가기보다, 잔잔한 파도 따라 백사장을 산책할 때 마음이 풀어진다”고 여행객 박채연 씨(35)는 이야기했다. 수심이 깊지 않아 가족 단위로도 부담이 없고, 소나무 숲의 그늘 아래선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도 쉽게 눈에 띈다. 흐린 날씨 덕에 햇볕 부담이 줄고, 오래도록 머물 수 있다는 것 역시 매력이다.
다소 긴 산책 끝에 실내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원한다면 ‘고성 통일전망타워’가 손꼽힌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펼쳐지는 전시와, 창 너머 멀리 북녘 마을을 바라보는 순간, 여행의 결은 한층 깊어진다. “이곳에서 남북의 경계를 마주할 때마다 우리 삶도 어딘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현장 안내원 황성민 씨는 느꼈다. 야외 활동이 부담스러운 날, 회색빛 하늘 아래서 고성의 역사와 안보를 천천히 음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조금 더 자연을 가까이 느끼고 싶다면 ‘송지호 철새관찰타워’도 주목할 만하다. 실내 망원경으로 철새와 습지를 관찰하고, 산책로와 이어진 트레킹 코스까지 곁들일 수 있다. SNS에선 “짧은 일정에도 마음이 환기되는 느낌”이라는 방문 후기가 적지 않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해수욕만이 답이 아니다”, “흐린 날 바람 맞으며 산책하는 맛이 있다”는 공감이 쏟아진다. 그만큼 오늘처럼 시원한 바람과 높은 구름이 펼쳐진 채, 해안과 실내 전시, 자연탐방을 연결하는 일정이 예전보다 사랑받고 있다.
여행은 어느 날씨든 그만의 리듬이 있다는 걸, 고성의 여름이 조용히 알려준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