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의 무대, 소외와 사랑을 삼키다”…정택운·정선아, 아프게 뒤흔든 용기→뮤지컬 신화의 재탄생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문을 열며 희망을 일으키던 정택운의 눈빛은 정선아의 압도적인 목소리와 닿아 무대를 한순간에 전율로 가득 채웠다. 서로 다른 인생에서 건져 올린 용기와 사랑이 1950년대 멤피스의 공기 속에 펼쳐지며, 두 배우의 존재감은 차별과 두려움을 노래로 제압하는 듯했다. 낯선 땅에서 시작된 로큰롤의 꿈과, 그 안에 서려 있는 불안과 도전이 객석에 오래 남는 울림을 던졌다.
뮤지컬 ‘멤피스’는 흑인 음악을 세상에 알렸던 실존 인물 듀이 필립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종 차별이 일상이었던 미국 남부 테네시의 빌스트리트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백인 진행자임에도 흑인 음악을 주파수에 태운 DJ 휴이는, 펠리샤의 노래에서 시대를 바꿀 가능성을 보았다. 이미 많은 영화와 작품에서 다뤄진 인종 문제지만, ‘멤피스’는 휴이와 펠리샤라는 생생한 캐릭터의 고통, 연대, 그리고 약자의 선택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용기가 사회의 벽에 균열을 내는 그 순간,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깊은 사유로 이끈다.

이번 시즌에는 박강현, 고은성, 이창섭, 정택운이 휴이 역에, 정선아, 유리아, 손승연이 펠리샤 역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정택운은 익살스럽고 불같은 열정으로 휴이를 새롭게 채색했고, 정선아는 거침없는 가창력과 진정성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펠리샤의 음악은 더 이상 단순히 ‘흑인 음악’으로 규정될 수 없다는 점을, 정선아의 노래 한 소절에서 납득하게 된다. 빌스트리트의 소음과 빛, 금지된 사랑과 두려움이 어우러지는 무대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진실에 가까워졌다. 휴이와 펠리샤의 선택에는 정답이 없었다. 서로 응시하고 존중하는 사랑, 그리고 타인의 꿈을 품는 용기가 고요히 번졌다.
재연에도 함께한 김태형 연출과 양주인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감독의 시너지는 공연의 밀도를 높인다. 빅밴드 라이브의 생동감, 드럼과 색소폰이 어루만지는 현실적인 무대 디자인, 기록처럼 살아있는 LP판 모양의 오프닝, 그리고 분할된 무대 위 각기 다른 현실의 충돌은 아픔과 희망을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특히 관객의 내적 댄스를 끌어올리는 넘버와 화려한 앙상블, 그리고 “삽질하다 새길 파는 거지”라는 휴이의 한 마디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닿았다. 베테랑 배우 최민철, 최정원 등도 극의 중심을 단단히 지켰다.
‘멤피스’는 단순한 로맨스나 뻔한 영웅 서사가 아닌, 각자의 현실에서 끝내 자신을 지켜낸 개개인의 신념을 그린다. 펠리샤가 음악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길, 휴이가 끝내 남아 지키고자 한 마을과 청취자. 두 길은 달랐지만, ‘차별에 맞서는 음악의 힘’이라는 뮤지컬의 메시지는 공연 마지막까지 올곧았다.
이 공연은 충무아트센터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이자, 리모델링을 마친 대극장에서 새롭게 관객을 맞는다. 뮤지컬 ‘멤피스’는 9월 21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