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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바다에 스며드는 여름”…통영에서 만나는 조용한 계절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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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바다에 스며드는 여름”…통영에서 만나는 조용한 계절의 여유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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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흐린 하늘과 무더위가 뒤섞인 날씨에도 통영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예전엔 맑은 날씨만이 여행의 조건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오히려 흐림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바다 풍경과 시원한 바람이 통영 여름의 일상이 됐다.

 

21일 기준 경남 통영은 흐린 가운데 낮 기온이 27도, 체감온도는 29.4도를 기록했다. 습도 83%, ‘높음’ 수준의 자외선 지수는 잠시 걷기에도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이렇게 흐리고 더운 날, 사람들은 그늘 진 곳이나 바닷가에 기대어 천천히 걷는 방법을 택한다. 동피랑 마을 산책로에는 형형색색의 벽화가 흐린 날씨와 어울려 더욱 선명히 다가온다. 햇볕을 피해 그늘진 길을 골라 걷다 보면, 낡은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들 사이에서 사진을 남기는 풍경이 이어진다.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소매물도
사진 출처 = 포토코리아(한국관광공사) 소매물도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최근 현지에서는 평일, 주말 모두 동피랑 벽화마을 근처를 찾는 산책객이 꾸준히 늘었고, 도심과 가까운 남망산조각공원 역시 바다를 따라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또 소매물도행 배편을 문의하는 관광객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흐린 날임에도 남해를 가로지르는 풍경이나, 소매물도의 ‘바다의 갈라진 길’과 같은 자연 현상을 보기 위해 일부러 떠나는 여행객들이 많아졌다.

 

실제로 기자가 체험해 보니, 적은 인파와 차분한 바람이 여름 통영의 정취를 더했다. 소매물도에서 마주한 뿌연 하늘과 푸른 바다의 경계, 그리고 출렁이는 바닷길은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에 오르면, 광활한 남해를 내려다보며 적은 움직임에도 시원함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현지 관광업계 관계자는 “요즘 통영 방문객들은 날씨가 맑지 않아도 차분하고 푸근한 바다 풍경을 찾는다며 흐림만의 색을 즐기는 분위기를 느낀다”고 표현했다. 전문 여행 칼럼니스트 역시 “여행은 단지 맑은 날 떠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변하는 계절과 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는 과정에 가깝다”고 조언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흐린 날 동피랑을 걷다 우연히 만난 바다 내음이 좋았다”, “남망산조각공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여름 피로가 풀렸다”는 방문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

 

작고 사소한 계절의 변화지만, 그 안에는 여행이 일상이 되고, 일상이 또다시 작은 여행이 되는 흐름이 담겨 있다. 거센 햇살보다 부드러운 바람이 어울리는 날, 흐린 통영의 여름은 누구나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조용한 쉼표가 돼 준다. 그리고 그 여운은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오랫동안 남는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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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소매물도#동피랑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