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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삼척의 명인들”…불술의 집념, 바다 모녀의 온기→삶이 천천히 무르익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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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한 바퀴 삼척의 명인들”…불술의 집념, 바다 모녀의 온기→삶이 천천히 무르익은 하루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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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의 천천히 흐르는 하루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웃의 손끝과 숨결에 스며 있었다. ‘동네 한 바퀴’는 여름 한가운데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을 진득하게 포착했다. 바다와 산이 맞닿은 작은 도시 곳곳에서 빛나는 순간은, 빠르게 변하는 도시와 달리 너무도 느릿하게 찾아왔지만 깊은 남다름을 남겼다.

 

불술을 빚는 부부의 산중 집에는 쌀겨와 불, 낡은 술독과 함께한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쌀겨에 불을 붙여 독을 덮는 삼척만의 전통 방식은 이곳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지켜온 삶의 방식 그 자체였다. 부지런히 전수자를 찾아 나선 집념은 산꼭대기 집을 지은 열정으로 이어졌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명인의 말에는 하루하루를 불에 달구듯 살아온 시간이 배어 있다.

더디게 흐르는 삼척의 하루…‘동네 한 바퀴’ 명인과 이웃, 시간의 온기→삶의 여운 남기다
더디게 흐르는 삼척의 하루…‘동네 한 바퀴’ 명인과 이웃, 시간의 온기→삶의 여운 남기다

산비탈 작은 집에는 계절마다 산나물이 풍성히 쌓인다. 임정숙 씨와 노모가 함께 살아가는 산중 마당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손길이 남은 추억의 장소다. 도시에서의 치열함과 고단함을 지나, 결국 고향의 품에 안긴 딸이 내어놓는 산나물 밥상과 청국장에는 오랜 그리움과 감사가 깃든다. 가족이 머무는 식탁, 계절 따라 바뀌는 나물, 지금도 집에 머무는 아버지의 흔적이 오래도록 남는다.

 

삼척의 바다 곁에는 폐여관을 예술 공방으로 바꾼 모녀가 있다. 윤혜미 씨와 딸 예원 씨는 조개껍데기와 유리, 바닷가 소라를 주워 손끝으로 변주한다. 이들의 손길에서 탄생하는 예술 작품은 심심해 보이던 거리에 천천히 생기를 입힌다. 지역 아이들과 방문객이 함께 체험하며, 모녀의 따뜻한 에너지가 삼척의 미래에 작은 씨앗으로 곱씹힌다.

 

관봉스님이 쌓아올린 수십 기의 돌탑에는 30년 넘는 세월과 인연의 깊이가 올려져 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님은 묵묵히 돌을 얹었고, 무너짐과 새로움을 반복하는 시간 속에서 욕심을 내려놓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 그 길에서 만난 모든 돌 하나하나가 고요한 가르침이 됐다.

 

오십천을 내려다보는 죽서루는 세월의 숨결을 머금고 절벽 위에 서 있다. 이곳은 옛 선비의 시와 삼척의 풍광이 어우러지는 곳, 작은 도시가 가진 풍류와 여유의 상징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문어를 잡는 장호항의 풍경에는 거친 바다와 따뜻한 부정이 오롯이 깃들었다. 오늘 잡지 못한 문어를 내일 다시 바다에서 마주할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삼척의 하루를 천천히 익어가게 했다.

 

삼척에서 펼쳐진 ‘동네 한 바퀴’의 기록은 하루가 시드는 것이 아니라 무르익어 감을 보여주면서, 느린 시간 속에서 진하게 남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노래했다. 이번 이야기는 8월 16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동네 한 바퀴’ [무르익다, 평화 – 전라남도 목포시] 편으로 다시 이어질 예정이다.

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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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삼척#불술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