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켜진 한산읍성, 밤의 역사가 흐른다”…서천 도심에서 만나는 국가유산야행의 감동
가을 문턱, 야심한 밤이 깊어질수록 충남 서천 한산읍성의 풍경은 더욱 특별해진다. 예전엔 밤의 성곽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모든 세대가 모여 시간을 공유하는 축제의 밤이 됐다.
요즘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유산의 감동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었다. ‘서천국가유산야행 축제’는 9월 5일부터 6일까지 한산면 일대에서, 주민과 여행자의 걸음을 끌어당긴다. 올해는 ‘한산을 지키는 두 개의 성’이라는 주제 아래, 건지산성과 한산읍성이 각기 다른 빛과 이야기로 관람객을 맞는다.
야경 프로그램에선 한산읍성 전체를 따라 조명이 켜지며, 역사의 시간 위에 쏟아지는 빛이 낭만을 더한다. 밤공기를 가르는 제등 행렬, 차마설 강연, 장인들의 시연과 과거시험 체험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서천의 옛 이야기는 창작극, 음악 공연, 명창의 판소리에 담겨 무대 위에서 지금도 숨 쉬듯 이어진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읽힌다. 최근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유산 야행 축제의 참여 인원은 매년 증가 추세다. 지역 경제 효과도 뚜렷해졌다. 서천군과 서천문화관광재단은 올해 더욱 다양한 참여형 콘텐츠와 환경 활동, 가족 체험 프로그램으로 방문객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현장에서는 ‘지역과 시간이 뒤섞인 밤’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문화 체험을 경험한 한 방문객은 “조명을 따라 걷다 보니 오랜 역사가 내 뒤를 비추는 것 같았다”며 여운을 전했다. 서천 특산품과 푸드트럭, 별미가 어우러진 푸드존 역시 퇴근 후 저녁 시간을 특별하게 바꿔놓는다.
축제 전문가들은 “야간 유산 향유는 일상과 전통, 세대 간 감각의 벽을 허무는 새로운 방식”이라며 “전통 공간에서의 경험은 도시의 단조로운 밤에 깊이를 더한다”고 느꼈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SNS에는 “아이와 손잡고 걷는 성곽길이 오랜만에 일상에 온기를 가져다준다”, “서천의 밤이 이토록 다채로운 줄 몰랐다”는 공감이 이어진다.
9월, 서천의 밤은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무대가 아니다. 낡은 성곽 위로 첨단 조명이 흐르고, 장인의 손끝과 예술가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작고 견고했던 옛 도시는 모두를 위한 열린 축제의 거리로 변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밤의 길 위에서 만나는 작은 기적이, 어느새 오래된 서천의 기억을 다시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