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수 혈투 끝 집념의 미소”…이지현, 리친청 돌려세우며 개막전 승리→한국 4년 만의 쾌거
긴장에 휩싸인 대국장, 모든 주목은 오롯이 바둑판 위 한 점에 모였다. 이지현 9단은 흔들림 없는 수읽기로 226수까지 끈질기게 버텼고, 결국 중국 리친청 9단의 항서를 받아냈다. 끝내기까지 단 한 번의 방심 없이, 마지막 돌을 두는 순간 이지현의 표정은 많은 의미를 담은 채 빛났다.
제27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국이 3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진행됐다. 한국의 이지현은 백을 들고 첫 번째 주자로 나서, 중국 대표 리친청을 상대로 불계승에 성공했다. 이지현은 13번째 대표 선발 도전 끝에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농심신라면배 무대에 올랐다.

경기 초반부터 침착하게 균형을 잡던 이지현은, 중후반 하변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다. 상대의 흑 영역을 침입하고 무너뜨린 이지현의 묘수는 장고 끝에 빛을 발했고, 한·중 대결의 무게감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리친청은 226수를 넘기지 못하고 기권을 선언했다. 이날 승리로 한국은 농심신라면배 개막전에서 4년 만에 웃음을 되찾았다. 직전 개막전 승리는 제23회에서 원성진 9단이 거둔 바 있다.
이지현은 대국 직후 “부담감이 있었으나 이길 수 있어서 기쁘다”며 담담한 소감을 전했다. 이어 “내일 바로 대국이 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기뻐하겠다”고 덧붙여,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을 예고했다.
다음 맞상대는 일본 대표 후쿠오카 고타로 7단이다. 이지현의 연승 여부는 5일 오후 이어질 2국에서 판가름난다. 농심신라면배 우승 상금은 5억원, 제한시간은 각자 1시간에 초읽기 1분 1회로 정해졌다.
같은 장소에서는 제3회 농심백산수배 세계바둑시니어최강전도 열렸다. 이곳 1국에서는 일본의 나카노 히로나리 9단이 중국 차오다위안 9단을 불계승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4일 오전엔 한국 김영환 9단과 일본 나카노의 대결이 예고돼 있다. 시니어 대회 상금은 1억8천만원, 제한 시간 역시 초읽기 1분 1회로 운영된다.
한 점 한 점 쌓아 올린 승부의 흔적 위로, 마주 앉은 두 기사와 관전객들은 오랜만에 맞는 한국의 개막전 승리에 의미를 더했다. 치열했던 농심신라면배 현장의 섬세한 숨결은 9월 3일 저녁, 중국 칭다오에서 고스란히 기록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