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숲 사이를 걷는다”…영덕, 천천히 머무는 해안 마을의 유혹
요즘 동쪽 바다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조용한 어촌으로만 여겨졌던 영덕이 이제는 자연과 역사를 품은 여행자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사소한 변화지만, 그 안엔 바다와 숲을 함께 누리는 새로운 휴식의 풍경이 담겨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흐린 하늘 아래 오전 바람이 부드럽게 스친다. 강구항에 들어서면 갓 잡아 올린 해산물의 싱싱함과 어민들 특유의 활기가 어우러진다. 알록달록한 어선들이 한 데 모인 항구 풍경은 사진 한 장에 담기에 아까울 만큼 생동감이 크다. 항구를 따라 걷는 이들은 특유의 바다 냄새와 사람들의 일상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어촌의 시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조금만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은 어촌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정갈하게 전한다. 동해안에서 전해 내려온 별신굿, 뱃일의 고됨, 해녀들의 물질 등 유물과 전시물에서 숨결이 느껴진다. 물때를 기다리는 나지막한 대화, 맨손으로 생계를 이어온 노동의 흔적들은 여행자에게 조금은 잊고 지낸 근원의 감각을 일깨운다.
영덕읍 창포리로 가면 푸른 바다와 붉은 대게 조형물, 창포말등대가 어우러진 명장면이 기다린다. 등대 아래 바닷길을 걷는 이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모래알을 밟고,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세상의 소란을 잠시 내려놓는다. 등대 주변 산책로는 가을이면 한결 더 깊어진 바람에 걷는 즐거움이 배가된다며, 최근 방문한 손모(35) 씨는 “한참을 서 있으면 마음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고 고백했다.
숲을 더 바라며 영해면 벌영리로 향한다.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이 촘촘히 늘어선 숲길은 도심의 소음을 잊고 싶은 이들에게 더없는 위로를 준다. 길게 뻗은 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 낮게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결에 실려오는 흙냄새가 여행의 끝을 조용히 닫아준다.
이런 흐름은 여행에 대한 우리의 태도마저 달라지게 한다. 이제는 멀리 떠나는 것보다 가까운 곳, 바다와 숲의 시간을 돌아보며 천천히 자신을 회복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관계와 일에 지친 일상에서 잠시 한적한 풍경 속에 머무는 것, 그 자체가 소중한 쉼이 된 셈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영덕 사진만 봐도 머리가 맑아진다”, “항구 산책로에서 먹는 대게는 꼭 경험해봐야 한다”, “메타세콰이어 숲에서 혼자 걷고 싶다” 등 직접 다녀온 이들뿐 아니라,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공감이 이어진다.
작고 사소한 여행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리듬을 바꿀 여유와 기운을 얻는 이들이 늘고 있다. 영덕의 바다와 숲, 그리고 그 사이를 거니는 시간이 지금 우리에겐 필요한 작은 쉼표일지 모른다.